유망주 출신, 미국 생활 마치고 SK 입단
타고난 장타력 호평, 기대만발 거포 자원
“타격폼을 바꿔 보는 게 좋겠다. 상체가 너무 들어간다”

2010년 봄. 청운의 꿈을 품고 이제 막 미국 땅을 밟은 김동엽(26, SK)은 시카고 컵스 산하 루키팀의 한 타격코치에게 타격폼 변경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상체가 들어가 타구에 힘을 실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노스텝으로 타격을 했던 김동엽의 타격폼은 그때부터 왼발을 살짝 들고 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타격폼을 완성시키면 성공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그 효과를 제대로 느낄 시간은 없었다. 곧바로 어깨 수술을 받았다. 이후 기나긴 미국 생존기가 시작됐다. 2011년은 루키 리그에서, 2012년은 하위 싱글A에서 뛰었다. 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합계 성적은 타율 2할5푼, 7홈런, 27타점이었다. 가능성을 보였지만, 그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너무나도 많은 미국이었다. 결국 김동엽은 귀국을 결정했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009년 55만 달러를 받고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한 김동엽은 그간 잊힌 유망주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야구와는 잠시 떨어져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올해까지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뻔했다. 2016년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김동엽을 주목하는 구단은 많지 않았다. 8라운드까지도 김동엽을 지명하는 팀은 없었다. 그러나 극적으로, 9라운드에서 SK가 김동엽의 이름을 불렀다. SK가 이날 유일하게 ‘타임’을 요청한 순간 이후 나온 호명이었다.
당시 드래프트장에도 가지 않고 개인훈련을 하고 있었던 김동엽은 “특별히 섭섭하지 않았다. 사실 지명될 줄도 몰랐다. 지명되지 않더라도 육성선수 입단을 통해 프로에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라고 떠올린다. 하지만 SK는 당시 김동엽을 지명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실감하고 있다. 김동엽도 한국에서 야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캠프에서 최대 화제작이 됐다.
김동엽은 21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 6번 좌익수로 출전, 멀티히트를 터뜨렸다. 5회에는 김재영의 빠른 공을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터뜨리기도 했다. 연습경기이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첫 홈런. 이 홈런을 지켜본 SK 동료들 및 관계자들은 “제대로 맞은 것이 아니었다. 바깥쪽 공이었는데 그냥 힘으로 윽박질렀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김동엽의 힘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플로리다 캠프에서 타격 훈련을 할 때 좌측 조명탑 상단의 조명을 맞힌 것은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다. 프로필상 187㎝에 101㎏이라는 당당한 체격 조건을 자랑하는 김동엽에 대해 SK 선수들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지는 모르겠다”라고 놀라워 할 정도다. 여기에 발도 빠르다. 100m를 11초 정도에 주파한다. 축복 받은 신체조건임은 분명하다.
그런 김동엽은 6년 전 그때를 떠올리고 있다. 다시 타격폼을 바꿨다. 정경배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노스텝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힘은 충분하다. 공을 끝까지 보고 노스텝으로 쳐도 충분히 담장을 넘길 수 있다”라는 판단 때문이다. 김동엽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런 폼이었다. 미국에 갔을 때는 아무래도 체구가 작아 폼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커졌다”라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이다.
그때도 첫 시작이었고, 지금도 첫 시작임은 마찬가지다. 나이는 벌써 만 26세가 됐지만 KBO 리그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다. “동료들과 함께 단체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미소를 지은 김동엽은 수비에서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발이 빨라 수비 범위는 넓은데 아무래도 수술을 받았던 어깨에 대한 불안감은 있다. 김동엽은 “아직은 송구에서 트라우마가 있다. 실전에 들어가면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은 있는데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라며 각오를 다진다.
홈런도 치는 등 큰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지만 김동엽은 그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어느덧 동료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미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같은 방을 쓰는 김광현은 “엄청나게 말이 많은 편”이라고 말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야간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 관계자에게 자신의 타격폼을 동영상으로 받아 ‘감 잡기’에 열중하고 있다. “아직 감이 왔다가, 또 갔다가 한다”라고 환하게 웃음 짓는 김동엽이지만, 그 감이 진짜 온다면 SK는 축복 받은 거포 요원을 얻을 수 있다.
2016년 프리뷰
천부적인 힘을 가졌다. 외국인 타자 못지않은 힘이라는 호평 일색이다. 결국 정확성이 관건인데 타격폼 변화가 얼마나 효과를 보느냐에 따라 KBO 리그 적응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다. 그간 오래 실전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감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시간은 다소 걸릴 수 있겠지만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잡고 있다는 평가로 희망적인 구석이 보이고 있다. 포지션은 지명타자, 1루수, 좌익수 소화가 가능하다. 송구에 대한 부담까지 털어내고 외야까지 소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SK도 김동엽을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올해 1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이라는 계산이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지만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지 않는다면, 향후 2~3년 안에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선수로 클 수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오키나와=이대선 기자 /sudn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