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숨은 헥터, 이빨 숨긴 호랑이인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2.23 05: 51

첫 실전 등판 마무리, 변화구 사실상 봉인
"정규시즌 문제 없다" 선수-구단 자신감
KIA 새 외국인 투수 헥터 노에시(29)는 많은 이들의 궁금증에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철저히 정체를 숨긴 채 한국에 들어간다. 그러나 자신감은 확실하다. 선수는 물론, 구단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읽힌다.

총액 170만 달러에 KIA와 계약을 맺은 헥터는 22일 일본 오키나와 코자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KIA 유니폼을 입은 이후 첫 실전이었다. 2이닝 동안 25개의 공을 던지며 컨디션을 점검했다. 외견상 성적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1회 안타 3개를 맞으며 2실점하는 등 2이닝 3피안타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148㎞가 나왔다. 메이저리그(MLB) 시절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치다.
그러나 등판을 마친 헥터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만족한다”라며 이날 등판을 총평했다. 헥터는 “시즌 개막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면서 “일본에서의 첫 등판이자 마지막 등판이었다. 해왔던 루틴대로 준비하겠다”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김기태 KIA 감독도 “템포도 좋고, 퀵모션도 빨랐다. 여유가 있었다. 첫 등판이니 실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기를 살렸다.
자신감은 엿볼 수 있었다. 경기 내용을 뜯어보면 헥터와 김 감독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고개가 끄떡인다. 헥터는 이날 등판이 2~3개월 만의 첫 실전 등판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보편적인 일인데 다른 점도 있었다. 뭔가를 크게 숨긴다는 기분도 들었다. 헥터는 1회 빠른 공 위주의 승부만 했다. 안타를 맞은 3개가 모두 빠른 공이었다.
이날 히로시마 라인업은 1군 최정예였다. 빠른 공만으로 이 타선을 이겨내기는 버거웠다. 그래서 그런지 2회부터는 변화를 줬다. 132~138㎞에 형성된 체인지업을 적절하게 섞어 던졌다. 변화구를 던지자 투구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다. 헛스윙 삼진 2개를 잡아냈다. 모두 체인지업이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주무기라고 할 수 있는 슬라이더는 딱 1개(140㎞)를 던졌다. 커브(124㎞)도 25구 중 1개였다. 가진 변화구를 모두 활용하지 않은 것이다. 빠른 공 승부만 하면 실점이 계속 불어날 것 같으니, 2회에는 체인지업만 섞어 등판을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속내가 엿보였다. 1회 결과가 좋았다면, 어쩌면 2회도 그냥 빠른 공 위주의 컨디션 점검으로 이날 등판을 끝낼 수도 있었다.
이날 코자구장에는 헥터의 투구를 보기 위해 한화·삼성·SK의 스카우트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KIA의 외인 에이스로 활약할 헥터의 장·단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헥터가 이날 보여준 것은 빠른 공과 몇 개의 체인지업뿐이었다. 한 관계자는 “오늘 경기에서는 헥터라는 선수의 전반적인 모습을 본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전력 노출은 최소화하고, 대신 실전 감각을 보완했다. 애당초 KIA가 가진 노림수였다는 게 설득력을 얻는다.
스스로부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숨긴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숱한 취재진의 질문은 모두 가벼운 미소로 넘겼다. 심지어 “올 시즌 목표도 밝힐 수 없다”라고 말한다. 단지 “동양야구는 다르기 때문에 마운드나 훈련 방식, 그리고 경기 스타일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할 뿐이다. 지금 헥터의 인상은 마치 이빨을 숨긴 호랑이와 같다.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경력이 확실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MLB에서 5시즌 동안 뛰며 107경기(선발 53경기)에서 12승31패 평균자책점 5.30을 기록했다. 한국에 온 선수 중 MLB 선발 경력이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기량은 있으니 이제 정규시즌에 맞춰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일만 남았다. 헥터는 “신체적으로는 완전히 준비가 됐다. 정규시즌 개막에 모든 것을 맞추고 있다.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앞으로도 자신을 최대한 숨길 헥터의 자신감은 정규시즌에서 확인해야 할 것 같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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