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에 또 훈련, SK 4번 타자 예약
철저한 준비, 2016년 최대 기대주
보통 프로야구단 전지훈련의 하루 일과는 8시 이후 시작된다. 8시 정도에 모여 식사를 하고, 일찍 훈련을 하는 조는 8시 30분 쯤 숙소를 떠나 9시경 경기장에 도착한다. 나머지는 조금 더 늦게 숙소를 뜬다.

때문에 대부분 방에서 나오는 시간은 8시 전후가 된다. 여기에 피곤한 일과, 그리고 장기간 타지 체류가 이어지는 전지훈련이다. 이맘때쯤이면 선수들과 몸과 마음이 조금씩 지치기 마련이다. 한 코치는 “가면 갈수록 기상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어쩔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SK의 숙소에는 누구보다 빨리 아침을 시작하는 선수가 있다. 올해 팀의 4번 타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정의윤(30)이 그 주인공이다.
정의윤은 전지훈련 기간 동안 철저하게 생활 시간표를 지켰다. 휴식일이든, 휴식일 다음 날이든 오전 6시 30분이면 항상 눈을 뜬다. 옷을 입고 6시 50분이 되면 방에서 나온다. 보강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숙소 내에 마련된 웨이트룸에서 간단하게 훈련을 하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시간은 거의 오차가 없다. 또한 하루 훈련을 소화하면 무조건 오후 10시 30분에는 잠에 든다. ‘방졸’인 유서준도 방장의 일과에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 일정이 익숙해졌다.
하루 종일 운동이 거듭되는 전지훈련이다. 아침을 먹기 전까지 훈련과 싸우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정의윤의 의지와 루틴은 단연 돋보인다. 지난해 7월 SK로 트레이드된 정의윤은 이적 후에만 14개의 대포를 쏘아 올리며 SK의 4번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했다. 올해도 팀의 4번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의윤은 자세를 낮춘다. “나는 아직 보여준 게 없는 선수”라며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이번 캠프에서도 훈련량은 많았다. 플로리다 캠프 당시 오후 일과와 야간 일과 사이에 몰래 실내연습장에서 타격 훈련을 하다 정경배 타격코치에게 강제로 연행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혼자 조용히 연습을 하면 참 잘 되는데 때마침 걸려서 끌려 나갔다. 도대체 제보자가 누구냐”라고 울상을 짓는 정의윤의 표정에서 올 시즌 각오를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성공이 절실한 정의윤이다.
LG 시절 유망주로는 평가됐지만 좀처럼 그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해 구단과 팬들의 애를 태웠던 시간이 길었다. 지난해 트레이드로 전기를 마련했으나 스스로의 말대로 아직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적어도 올해, 그리고 내년까지 잘해야 진짜 4번 타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정의윤이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유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기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결혼식까지 미룬 아내를 생각하면 눈을 돌릴 새도 없다.
비시즌 기간 중 가장 중점을 두고 훈련한 것은 바깥쪽 코스 공략이었다. 정의윤의 취약점이다. 지난해 가고시마 캠프 당시 김용희 감독은 “다른 건 4번 타자인데 바깥쪽 공략은 7번 타자였다. 이번 캠프를 보내고 나서 보니 이제 6번쯤으로 올라온 것 같다”라고 웃었다. 이 문제는 정의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가고시마부터 플로리다와 오키나와까지, 좀 더 완벽한 4번 타자가 되기 위해 연구도 많이 하고 땀도 많이 흘렸다. 김 감독은 “그냥 놔두면 알아서 하는 선수”라며 신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정의윤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오키나와 캠프에서 가진 6경기에서 타율 3할1푼8리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고민이 너무 많다”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나 ‘6시 50분’의 초심을 쭉 간직한다면 언젠가는 풀릴 문제인지도 모른다. “숙소에서 6시 50분에 나오는지 어떻게 알고 계셨느냐”라고 반문하는 정의윤이지만, 정의윤보다 더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김용희 감독은 이미 1층 로비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2016년 프리뷰
SK는 4번 타자 자리가 항상 고민이었다. 간판 선수, 그리고 한창 잘 치던 선수도 4번에만 위치하면 힘을 못썼다. 하지만 정의윤은 그런 것이 없다. 오히려 ‘4번 체질’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SK의 4번 후보가 된 이유다. 오키나와 캠프에서도 한 번의 예외 없이 4번 타자로 출전하고 있다. 김용희 감독은 이미 정의윤을 ‘선발 4번 우익수’로 결정한 상태다. 지난해 후반기만한 엄청난 장타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정확도까지 높아진다면 금상첨화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자신의 몫은 할 수 있다. 고메즈의 가세와 최정의 재기 조짐, 그리고 최승준 등의 가세로 더 강해진 하위타선을 생각하면 상대 마운드도 정의윤을 피해가기 어렵다. 해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노력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한다. 그 노력의 씨앗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리그 최고의 4번 타자를 놓고 경쟁할 만한 후보다. 집요한 견제를 이겨내는 것은 관건이지만 그 잠재력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사진] 오키나와=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