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마음으로 시즌 준비, 적응력 검증
분위기 주도까지, 외인 구심점도 기대
“메릴 켈리가 아니야. 메릴이 아니라 메뤌이야. 다시 한 번 해봐”

25일 SK의 훈련이 열린 일본 오키나와의 구시가와 구장. 점심 식사를 마친 투수들이 훈련이 시작되기 전 실내연습장에 앉아 가볍게 소화를 시키고 있었다. 그 때 한 외국인 투수의 영어 발음 강습이 시작됐다. 주제는 다양했다. 선수들이 자주 가는 패스트푸드점의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는가 하면, 간단한 영어 단어, 그리고 동료 선수들의 이름까지 원어민의 발음으로 교정해줬다. 잘 따라하지 못하면 주위 투수들의 박장대소가 터졌다.
마치 미국 코미디언처럼 눈을 크게 뜨고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지어가며 강습에 열을 올린 선수는 바로 크리스 세든(33, SK)이었다. 세든은 국내 선수들이 모여 있는 무리의 한가운데 앉아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했다. 마치 베테랑 투수들이 신예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것과 흡사했다. 동료들을 한참이나 웃긴 세든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2013년 14승을 기록하며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던 경력이 있는 세든은 2014년과 2015년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SK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2014년 일본프로야구 최고 명문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세든은 결국 일본에서 실패한 채 방출됐다. 그 후로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대만에서 뛰기도 했다. 시련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트래비스 밴와트의 손목 골절상으로 외국인 한 자리가 빈 SK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처음에는 크게 부진해 ‘재퇴출론’까지 거론되기도 했으나 시즌 막판인 9월 이후에는 6경기에서 35이닝을 던지며 5승1패 평균자책점 3.34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을 도왔다. 그리고 올해 연봉 50만 달러에 재계약하며 SK에 남았다.
2014년 요미우리 소속으로 SK와 오키나와 연습경기를 했을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세든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국보다는 라커룸 분위기가 좀 더 무겁다”라고 걱정하기도 했었다. 진중한 외모와는 달리 평소에는 유쾌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세든으로서는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시기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세대교체 흐름으로 젊은 투수들의 비중이 높아진 SK다. 여전히 베테랑 선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세든도 어린 투수들에게 다가가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한 명의 리더로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사이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심적으로 방황하던 켈리를 잡아준 것도 세든이었다. 새로 입단한 도미니카 출신 헥터 고메즈도 잘 챙긴다. 보통 인종별로 따로 어울리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세든은 고메즈의 최고 말동무로 한국 적응을 도와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제 세든도 본격적인 출격 준비를 알린다. 오키나와 등판 계획이 없는 켈리와는 달리, 세든은 26일 KIA와의 경기에 중간계투로 출격해 1~2이닝 정도를 소화할 예정이다. /skullboy@osen.co.kr
[사진] 오키나와=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