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포항 스틸러스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마르지 않는 샘물을 뜻하는 말인데 포항의 유스 시스템도 꼭 그렇다. 황선홍 감독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포항의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팀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 즉 팀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유스들을 키워냈다.
포항은 최근 몇 년간 외국인 선수 영입에 인색했다. 드물게 거물급을 영입하기도 했으나 가격대비 효율을 내지 못한데다 모기업인 포스코의 철강 산업 악화로 허리띠를 졸라맨 까닭이다.

프로의 세계에선 투자가 곧 성적과 직결된다. 포항을 위기에서 구해낸 건 유스들이었다. 이명주 김승대 고무열 손준호 신진호 김대호 문창진 이광혁 등이 K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이명주 김승대 고무열은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K리그 신인왕 및 영플레이어상을 독식했다. 지난해에는 손준호가 영플레이어상급 활약을 펼쳤다. 신진호와 김대호는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문창진과 이광혁은 팀의 현재와 미래로 성장했다.
2016년, 포항엔 또 한 번의 한파가 불어닥쳤다. 핵심 요원인 김승대(옌볜 푸더), 고무열(전북), 신진호(서울)가 팀을 떠났다. 지갑도 닫았다. 올 시즌 포항의 외국인 선수는 라자르 한 명 뿐이다.
포항의 새 수장은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최진철 감독이었다. 쉽지 않은 여건, 많은 이들은 가시밭길을 점쳤다. 하지만 그는 전임 황선홍 감독이 해왔던대로 유스를 발굴하며 스틸야드에 희망을 안겼다. 포철공고-영남대를 나온 22살의 유스 정원진이 주인공이다. 영남대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포항에 우선지명돼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고대하던 프로 데뷔전의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무대는 지난 2일 안방에서 열린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이었다.
최 감독은 우라와전에 불가피한 변화가 필요했다. 최전방 공격수 양동현과 최호주, 우측면 날개로 보직 변경한 라자르의 부진이 맞불린 까닭이다. 최 감독은 이날 라자르에게 원톱을, 정원진에게 우측면 날개를 맡겼다. 최 감독은 강상우, 이광혁 등 연령별 대표팀서 활약했던 수준급 날개 대신 정원진의 데뷔전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최 감독의 결정은 200% 성공했다. 정원진은 공격포인트가 없었음에도 강철 전사 중 가장 눈부시게 빛났다. 공수에서 만점 활약을 펼쳤다. 측면 날개가 가져야 할 기본기를 확실히 갖춘 그는 후반 초반 전광석화와 같은 슈팅으로 골대를 강타, 결정력까지 보유했음을 증명했다. 데뷔전이 맞나 싶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 감독도 "데뷔전 치고는 활발하고 자신 있게, 좋은 모습을 보여 굉장히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면서 "우라와전을 통해 발전한다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포항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최 감독은 지난해 말 취임 일성으로 이 같은 말을 남겼다. "포항은 어떤 팀보다 유스 시스템이 잘 돼 있지만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좋은 팀으로 가기 위해서는 유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포항엔 경기에 나가지 못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 많다.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dolyng@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