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족으로 널리 알려진 김재현(29, SK)은 최근 몇 달 사이에 주장 완장을 두 번이나 찼다. 첫 번째 완장은 지난해 11월 열렸던 팀의 가고시마 특별캠프였다. 두 번째 완장은 지난 2월 12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퓨처스팀(2군) 대만 전지훈련에서 받았다.
똑같은 완장이지만, 온도는 사뭇 달랐다. 주전 대부분이 참여하지 않은 가고시마 캠프에서는 김재현만큼 선·후배들을 잘 아우르는 선수가 없었다. 친화력과 리더십을 모두 인정받은 결과였다. 스스로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후자는 달랐다. 퓨처스팀 전지훈련의 주장이라는 것은, 1군 오키나와 캠프에 가지 못했다는 의미가 더 컸다. 김재현에게는 나름대로의 충격이었다.
플로리다 캠프까지 참가했던 김재현은 2차 명단에서 탈락한 뒤 대만으로 왔다. 김재현은 “21살 때 이후에 처음으로 2군 캠프에 왔다. 2차 명단에서 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경력이 화려한 선수는 아니지만 빠른 발로 항상 쓰임새가 좋았던 선수다. “내년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항상 1군 캠프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현실이 꽤 냉정했다.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대만도 생소했다.

김재현은 “사실 조금은 속상했다. 밀려나는 것 같기도 했다”라고 떠올렸다. 그 때, 김경기 퓨처스팀 감독은 김재현에게 주장의 중책을 맡겼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나태해질 수가 없었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다보니 초심이 생각났다. 절박함은 더해졌다. 어쩌면 김 감독의 말없는 충격요법이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질문에 김재현도 “돌이켜보면 그런 것 같다”라고 웃었다.
김재현은 “와서 주장을 한 게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허탈감에 늘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솔선수범을 해야 했다. 한 번도 숙소의 아침·저녁 식사를 거른 적이 없다. 그래야 후배들에게 식사에 대해 이야기할 명분이 생긴다”라면서 “대만에서 운동도 많이 했다. 일본에 있었다면 경기에도 많이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긍정적인 면을 찾았다. “정신을 잡아서 가는 것 같다”라는 총평에는 지난 20일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
김재현은 캠프에서 함께 했던 동료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간다. 4일 귀국행 비행기를 타 1군 선수단과 합류한다. 시범경기에는 출전을 위해서다. 자신의 구상에서 다소 어긋나 있었던 궤도가 20일 만에 정상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그 20일 동안 곰곰이 자신의 위치와 현 상황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앞으로 하기 나름이지만, 오키나와에서 실전을 뛰는 것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됐을 수도 있다. 김재현도 이 시간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몸은 피곤하다. 플로리다 1차 캠프는 훈련 위주였다. 예년보다 양이 많았다. 그런데 대만 2군 캠프도 초반에는 역시 강훈련이었다. 2군 선수단인 만큼 당연했다. 김재현은 그런 사정 때문에 올해는 훈련량이 예년보다 훨씬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흘렸던 땀을 성과로 보여줘야 할 때다. 피곤하지만 얼굴은 밝다. 전반적인 경기 감도 좋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의지가 새록새록 솟는다.
“어린 후배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에서 자극도 많이 받았다”라고 말한 김재현은 2월 12일의 그 쓰라렸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연습경기 몇 경기보다 더 중요한 자산이 될지도 모른다.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라고 다짐하는 김재현이 후일 대만을 소중한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2016년 프리뷰
플로리다 캠프 당시 SK는 선수단 전원을 대상으로 주력을 측정했다. 1위는 김재현이었다. 이진석 유서준 박계현 등 젊은 스프린터들을 제치고 왕좌를 되찾았다. 이제 서른이 된 나이지만, 여전히 발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베이스를 밟을 때 속력에 거의 손실이 없는 기술은 리그 최정상급이다. 도루 센스도 검증이 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제는 더 이상 대주자 요원으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시범경기에서 1군 엔트리에 드는 것이 당면 과제다. 외야 주전이 사실상 굳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어 있다. 이 경쟁에서 이긴다면 시즌 내내 많이 활용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여기에 약간의 운까지 따른다면, 데뷔 후 최고 시즌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