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아픔의 눈물 씻고 화려한 은퇴식
감독 부임 첫 시즌 통합우승 정조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은퇴식. 최태웅 감독(현대캐피탈)은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1년 전 아픈 기억과는 180도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다.

최 감독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인 우리카드와의 경기가 있던 지난 6일 배구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경기 후 정규리그 우승을 홈에서 자축하는 이벤트와 함께 자신의 선수 은퇴식이 열린다는 것. 다행해 3-0으로 승리하며 18연승으로 V-리그 최다 연승 신기록까지 작성해 현장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현역 시절 명 세터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이끈 동시에 부동의 국가대표 세터로도 활동했던 최 감독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현대캐피탈이 준비해준 은퇴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선수로서 작별인사를 했다. 유니폼을 입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유관순체육관 코트 위에서 볼을 토스하는 세리머니를 펼치며 그토록 익숙했던 손끝의 감각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최만호 씨의 모습이 보였을 때는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은퇴식 후 최 감독은 울음이 났던 것에 대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가 비디오카메라로 (경기하는 모습을) 찍어주실 정도로 많이 도와주셨다. 배구계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나한테 잘해주셨는데 난 불효자다. 그래서 눈물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에도 그랬던 적이 있는지 물었을 때 잠시 생각하던 최 감독은 비교적 최근 기억을 꺼냈다.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이었던 지난해 일이었다. 그는 “안산에서 경기를 하고 나서 라커룸에서 운 적이 있다. 당시 팀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선배로서 잘 하지 못해 라커룸 화장실에서 울었다”고 고백했다.
따로 묻지 않았다면 누구도 몰랐을 일이었다. 림프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선수로 탄탄대로를 달렸던 그와 눈물이라는 단어는 거리가 멀었다. 기쁨의 눈물이라면 몰라도 좌절의 분루는 어울리지 않았다. 최 감독 역시 “배구를 시작하고 라커룸에서 운 것은 처음이었다”라고 했을 정도다.
우승 경험이든 개인적 영광이든 이미 선수로서는 다 이룬 상태였기 때문에 얼핏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팀 후배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커져 생긴 것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이 눈물이 선수 최태웅에게 더 큰 발전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지도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바탕으로 작용했다. 지도자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을 향한 마음만으로도 눈물이 흐를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1년 전의 사건이 지금의 기쁜 날을 불렀다. 당시 흘린 게 아픔의 눈물이었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공식적으로 찍던 날, 그간 동고동락했던 가족이 눈앞에 나타나 순간적으로 터진 눈물이었지만 아픈 기억을 발판 삼아 사령탑에 부임해 절치부심하며 만든 18연승이라는 결과물 속에서 영광스럽게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는 기쁨까지 녹아 있었다. 최 감독은 이제 챔피언결정전에 나선다. 또 한 번 울 준비는 되어 있다. /nick@osen.co.kr
[사진]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