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의 패배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완성체'인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 인공지능이 '세기의 대결' 첫 대국에서 승리를 거둔데 대한 파장이 엄청나다.
'인간대표'로 나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상대한 이세돌 9단은 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 1국'에서 186수만에 불계패,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다.
비록 이벤트성으로 열린 바둑 게임이었고 5번의 대국 중 첫 경기에 졌을 뿐이지만 세계 최고 프로 바둑 기사이자 인간을 대표했던 이세돌 9단이 무너지자 이곳저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우선 바둑계는 그 충격파가 상당하다. 이날 미디어 상대 해설위원으로 나섰던 김성룡 9단은 이세돌 9단의 패배 후 가진 인터뷰에서 "프로 바둑기사 입장에서 충격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비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기자들도 마찬가지. 알파고의 실력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의심을 품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래도 이 9단이 이길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도 10명 중 7~8명 이상이 이 9단의 승리를 점쳤다. 바둑을 볼 줄 아는 일반인들도 "아직 기계가 바둑을 따라오려면 멀었다"면서 이 9단의 승리를 예측하는 이가 많았다. 설사 알파고가 이긴다 하더라도 "뭐 그럴 수 있지"라며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9단 역시 "5-0까지는 아닐 수 있겠다. 질 수도 있겠다"면서도 "첫 판을 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막상 이 9단이 패하자 무거워진 분위기다. 사람들은 '이 9단의 생각지 못한 패배'에서 '인류의 미래'로 주제를 옮겨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처럼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의 시작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 구글 딥마인드에서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는 스스로 경험을 쌓으면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탑재하고 있다. 일일이 프로그램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스스로 학습해 나가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과의 대결 후 5개월만에 이세돌 9단과 겨룰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 짧은 기간에 사실상 바둑 최고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알파고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 있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이 직접 한국을 찾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볼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쏟고 있는 구글은 즐거운 분위기다. 알파고의 승리가 결정되자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데이빗 실버 연구 총괄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를 예견하듯 슈미트 회장은 알파고를 만든 과학자와 기술자들도 인간이라는 점을 들며 "대국의 결과를 떠나 인류의 승리"라고 이번 대국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몸체도 없고 표정도 보이지 않으며 마음도 느낄 수 없는 알파고를 상대로 패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느낌의 아쉬움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구글은 남은 대국과는 상관없이 알파고의 첫 대국 승리로 많은 가능성을 옅볼 수 있게 됐다. 또 홍보효과도 확실하게 누렸다. 앞으로 알파고의 알고리즘이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킬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금은 아니라도 언제가는 인공지능이 이길 것이라 본다. 결국은 인간이 패배하리라 본다. 그것은 어필할 수 없는 부분이다"고 전날 기자회견에서 말했던 이세돌 9단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 어필할 수 없는 날이 예상보다 더 빨라졌다는 점이 이 9단의 패배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 오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일 것이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