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기사’ 이세돌 9단(33)의 패배소식은 ‘만수’ 유재학(53) 감독에게도 충격이었다.
이세돌 9단은 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 1국'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186수만에 불계패,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다. 평소 바둑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세돌의 경기에 주목했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머리를 넘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 한창이던 같은 시각. 모비스는 동천체육관에서 회복훈련을 하고 있었다. 훈련이 끝날 즈음인 오후 4시 40분경 이세돌이 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세돌이 이긴다’던 모 기자의 예언이 반대로 현실화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이세돌이 졌어? 허허. 농구감독도 컴퓨터가 하는 날이 오겠네?”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둑기사와 농구감독은 비슷한 점이 많다. 변화무쌍한 전술의 유 감독은 ‘만 가지 수’를 지녔다는 의미에서 ‘만수’라는 멋진 별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승부처에서 어떤 수를 쓸 것인지는 고민의 연속이다. 늘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결과에 따른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져야한다는 점에서 유 감독은 이세돌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다.

농구에도 바둑처럼 승부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변수’와 ‘묘수’가 존재한다. 1차전서 추일승 감독은 문태종의 후반투입이란 승부수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반면 문태종의 결정적 3점슛을 막지 못한 아이라 클라크의 로테이션 수비는 ‘실수’였다.
혼자 싸우는 바둑기사와 달리 농구감독은 선수관리와 선수단 사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유 감독은 코트 위에 선수들을 불러놓고 30분 이상 많은 대화를 나눴다. 2차전의 중요성에 대한 정신력 강조로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 ‘왜 이 전술을 써야 하는지’ 물어보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다. 선수들의 의견도 적극 반영했다. 그가 절대적 카리스마로 선수들에게 일방적 지시만 할 것이란 편견이 깨졌다. 유 감독은 열린 자세를 강조했다. 워낙 평소 훈련이 잘 돼있는 모비스다. 유 감독이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아서 척척 연습을 소화했다.
사람 대 사람이 싸우는 농구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선수들의 내면을 파고들어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1차전에서 3점슛을 넣고, 양동근을 잘 막은 최진수는 들떠 있었다. 그는 연습 중에도 표정이 밝았다. 추 감독은 최진수가 자만하는 것을 경계했다. 추 감독은 “최진수는 가진 능력의 3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며 계속 동기부여를 했다.
1차전서 결정적 자유투 실수를 범한 조 잭슨은 추일승 감독과 나머지 공부를 했다. 어린 선수 잭슨이 행여 부담을 느낄까 농담을 섞어가며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이었다. 잭슨도 감독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는 결의에 차있었다.
모비스와 오리온의 두 수장 모두 1차전에서 부족했던 점을 철저하게 보완했다. 두 감독의 지략싸움은 2차전서 어떻게 전개될까.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