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눈에는 실수였다. 그러나 인간계를 벗어난 인공지능의 세계에서는 최선이었고 정확한 한 수였다. 이제 완벽에 가까워서는 안되고 완벽해야 인공지능을 넘어설 수 있다.
이세돌로 대표되는 인류는 이틀 연속 충격에 빠졌다. 백돌을 잡은 이세돌 9단이 10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 2국에서 211수만에 알파고(AlphaGo)에 불계패했다. 전날 이 9단이 알파고에게 186수만에 불계패한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이라 충격은 더 컸다.
최소한 바둑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섰다고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프로기사들은 두 번째 대국에서 보여준 이세돌 9단의 바둑이 실수 없이 완벽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상대적으로 알파고의 착점에 대해서는 실수 혹은 무리수로 여길 만큼 생소하고 변화무쌍했다.

이날 해설위원으로 나선 유창혁 9단도 "상식적이지 않은 수로 보이지만 결국엔 의미가 있다. 프로 기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수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부분적으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수지만 연결된 후 보면 좋은 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수읽기를 초월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하면 완벽에 가까워서는 알파고를 넘을 수 없다. 완벽해야 알파고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여기에는 집중력, 체력, 직관 등 '인간'적인 요소조차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 두 번의 결과가 이를 말하고 있다.
이세돌 9단도 경기 후 "놀란 건 어제로 충분했다. 이제 할 말이 없다. 내용으로 보면 완패였다. 초반부터 한순간도 앞섰던 적이 없었다"면서 "특별히 이상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고 알파고가 완벽한 대국을 펼쳤다"고 완패를 시인했다. 이어 이 9단은 3국 전망에 대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한 판이라도 이길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알파고는 상대를 엄청나게 큰 집의 격차를 보이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반집이라도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확률을 가진 착점이 어디가 최선, 최상인지 찾을 뿐이다. 스스로 학습하지만 피로를 느낄 수 없고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인공지능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만큼 상대는 후반으로 갈 때 이기고 있다고도 지고 있다고도 확신을 할 수 없다. 결국 막판 초읽기에 몰리면 인간적인 실수가 곁들여지게 되면서 알파고의 장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에 따르면 알파고는 경기 중 승리여부를 추정할 수 있다. 팽팽해 보이지만 이미 승부가 끝났다는 메시지를 딥마인드 측에 넘겼다. 해설위원들이 박빙이라고 말할 때 알파고는 이미 승부가 결정났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당장 이곳저곳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한 기보를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세돌 9단을 이긴 기력의 알파고가 발휘한 전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기보가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바둑TV 해설위원 이희성 9단도 "알파고의 포석은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고 말할 정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어느 한 TV CF 멘트가 떠오른다. 인공지능이 어떤 존재인지 붙어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런 변화와 충격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의 대국은 이제 승부를 떠나 바둑계에는 새 바람이 되고 있다.
알파고가 바둑계에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셈이다. 새롭게 한계가 설정됐다는 뜻과 같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는 다음 목표를 인기게임 스타크래프트로 설정했다. 인공지능 시스템을 스타크래프트에 적용시킬 예정이다. 인공지능이 좀더 실생활로 접근했다.
오는 15일까지(11, 14일 휴식) 총 5번의 대국으로 치러지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3국은 오는 12일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다. 대국은 백을 잡은 기사에게 덤 7.5집을 주는 중국 바둑 규칙에 따라 진행된다. 대국 형식은 (접바둑이 아닌) 호선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전 대국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된다. 이 챌린지 우승자에게는 미화 100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며, 알파고가 승리하는 경우, 상금은 유니세프(UNICEF)와 STEM(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 교육 및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letmeout@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