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포비아'에 조마조마했던 이세돌의 역사적인 '첫 승'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6.03.14 08: 35

"이 정도면 이겼다고 해야 하는데 하도 많이 당해서..."
이세돌 9단의 1승은 '인공지능' 알파고가 돌을 거두기 전까지 그 누구도 섣부른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 더 극적이었다.
이세돌 9단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 4국에서 180수만에 '인공지능' 알파고에 불계승을 거뒀다. 4시간 40여분만에 거둔 쾌거였다. 

대국 초반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이 9단은 중반 이후 상대 중앙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도한 삭감이 좋지 않으면서 장고를 거듭해야 했다. 위기에 봉착한 이 9단은 알파고에 흐름을 넘기고 말았다.
그러나 이 9단은 중앙 흑돌 사이에 끼우는 78수를 두면서 사태를 해결하고 나섰다. 그러자 알파고가 우변 흑 87, 89, 93, 97, 101 등 이해할 수 없는 응수가 연속되면서 급작스럽게 흐름이 다시 이 9단에게로 쏠렸다.
해설위원으로 나선 송태곤 9단과 하호정 4단은 이에 대해 "이상한 수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면서 "알파고가 아니라면 한 대 때리든지 미쳤다고 할텐데 지켜봐야 한다"고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어 "이 정도면 이겼다고 말해야 하는데 하도 많이 당했기 때문에"라며 난감해 했다. 
평소라면 이 9단이 이겼다고 단언했겠지만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에 나선 해설위원을 포함한 프로기사들은 좀처럼 그런 말을 아꼈다. '알파고 포비아' 즉 알파고에 대해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 이날 패색이 짙던 알파고가 끝내기를 통해 점점 이 9단을 압박해가자 프로기사들과 기자들도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알파고가 'resign'이란 문구를 띄워 자신의 불계패를 인정했을 때 박수와 함성이 한순간 터져나오는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됐다고 볼 수 있다.
1국에서 보여준 알파고의 대국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마추어 기사도 두지 않는 곳에 착점한 수가 결국 이 9단을 조여가는 결정적인 수로 되살아났다. 평소같으면 흔들릴 수 있는 장면에서도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답게 꿋꿋이 제 갈길을 가는 알파고였다. 2국과 3국에서 더욱 변화무쌍하고 한수 더 보는 수읽기를 선보였다. 철저히 계산된 '끝내기'와 능숙한 '패싸움'까지 선보이며 이 9단을 사지로 몰아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에는 '인간이 아닌' 알파고에 황당해 했고 화를 내기도 했던 프로기사들이었다. 그러나 2, 3국을 치르면서 차츰 알파고가 두는 '생전 보지 못한 이상하면서도 인간적이지 않은 수'에 매료됐다. 오히려 알파고의 착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동료 기사 부르듯 '알사범' 혹은 '알선생'이라는 애칭까지 붙여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고 있다.
결국 실전에서 보여주는 알파고의 공포는 이 9단의 1승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했다. 대신 더 폭발적인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알파고 포비아는 이른바 '인공지능(AI) 포비아'로 확산됐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며 무기로 악용돼 결국 인간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관점이다.
알파고 개발사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4국을 마친 후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 승리로 이 9단이 얼마나 대단한 바둑기사인지 보여줬다"면서 "알파고는 초반 스스로 우세하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 9단의 묘수와 복잡한 형세에 알파고의 실수가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대국을 펼친 이유다. 알파고의 한계를 시험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개선할 수 있다"면서 "오늘 이 패배는 알파고에 매우 소중하다. 오늘 기보와 통계 수치를 면밀하게 분석해 향후 문제를 개선하는데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9단이 이날 거둔 값진 1승은 인류가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감격스럽다. 그러나 이를 통해 알파고는 또 한 번 약점을 보완, 더 완벽한 인공지능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된다. 알파고 포비아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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