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패배 후 성숙한 자세 빛나
성숙한 배구 문화로 이끄는 혁신적 행동
지난 24일 OK저축은행의 우승으로 끝난 NH농협 2015~2016 V-리그는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남자부에서는 준우승 팀이자 정규시즌 챔피언인 현대캐피탈이 시즌 내내 화제의 중심이었다.

현대캐피탈이 들고 나온 ‘스피드배구’는 이번 시즌 남자부의 최대 화두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연승으로 V-리그 정규시즌 최다 연승 기록까지 작성하게 한 새로운 스타일의 배구가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현대캐피탈은 이 스피드배구로 성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단순히 경기 내적으로만 보기 좋은 배구에 그치지는 않았다. 현대캐피탈은 24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있었던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1-3(20-25, 15-25, 25-19, 23-25)으로 패해 우승이 좌절됐을 때도 성숙한 모습으로 승자를 축하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다시 한 번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OK저축은행 선수들이 팬들 곁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코트를 떠나지 않았고, 시상식 직전 도열해 상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정규시즌에 현대캐피탈이 안산에서 우승을 확정했을 때 요청했던 특수효과를 OK저축은행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우승 현수막만 걸게 해준 것과는 상반되는 행보였다.
그저 약속된 대로 따르는 형식적인 축하도 아니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패배가 괴롭게 다가왔을 텐데 어떤 생각으로 축하를 하게 됐냐는 질문에 “(천안에서) 2연패할 때는 정말 괴로웠지만 오늘은 괜찮았다. 실력으로 진 게 맞다. OK저축은행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동업자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취재진도 감명을 받은 듯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는 최 감독의 등 뒤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항상 질문을 최대한 절제하고 차분하게 패자를 보내던 기자회견장의 일반적인 그림과는 다르게 이날 최 감독은 지고도 많은 질문을 받았다.
프런트 역시 감독과 같은 마음이었다. 최 감독은 나갔지만 승장 김세진 감독은 우승 세리머니가 있던 관계로 곧바로 들어오지 못했고, 그 틈에 현대캐피탈의 신현석 단장과 김성우 사무국장이 인터뷰실로 잠시 들어와 웃는 얼굴로 취재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다음 시즌 선전을 다짐했다. 이런 모습 역시 큰 경기에서 패한 뒤엔 얼굴을 붉히거나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뜨던 과거의 프런트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OK저축은행은 우승으로 구단의 가치를 올렸다. 현대캐피탈은 비록 패했지만 품격 있는 선택과 행동으로 프로배구 최고의 잔치 자체를 더욱 가치 있는 이벤트로 만들어줬다. 배구 문화를 좀 더 성숙하게 바꾸어놓은 현대캐피탈은 승부에서는 졌지만 위대한 패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팀이었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