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위압감이야. 이 녀석을 상대하는 것만으로 (강)백호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북산 대 산왕의 전국대회 2라운드. 강백호의 부상으로 북산은 2학년 센터 정병욱이 교체로 들어간다. 180cm에 불과한 정병욱은 ‘리바운드 머신’ 정성구(199cm)와 몸싸움을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움을 느낀다.
정병욱은 “뭐야, 이 녀석의 파워와 위압감은? 힘으로 좋은 포지션을 빼앗고 있잖아! 빌어먹을 포지션을 지킬 수가 없어!”라고 좌절하며 리바운드를 뺏긴다. 정성구는 “이 녀석은 전혀 경계할 필요가 없겠어”라고 안심한다. 결국 몇 분 만에 벤치로 물러난 정병욱은 “이 녀석을 상대하는 것만으로 (강)백호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강백호를 인정하게 된다.

농구만화 슬램덩크에서 회자되는 장면이다. 산왕전에서 강백호(189cm)는 자신보다 21cm나 더 큰 신현필(210cm)을 상대한다. 신현필은 농구초보자지만 엄청난 파워와 체격으로 쉽게 포지션을 잡아 골밑슛을 넣는다. 초반에 파워에서 밀리던 강백호는 하체 중심을 낮춰 신현필의 공격을 버텨낸다. 결국 신현필은 고교최고센터 신현철에게 “미안해 형”하면서 물러난다.
프로농구 챔프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자신보다 24cm가 큰 하승진(221cm)을 잘 막고 있는 이승현(197cm)이 바로 강백호다. 프로농구 최고센터 하승진이 신현필 같은 초보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승현에게 자리를 빼앗기면 하승진도 신현필처럼 공격옵션이 크게 줄어든다. 림과 멀리서 공격할 수 없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승현은 하승진과의 몸싸움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경기 중에 그런 상황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유독 챔프전에 많이 맞고 뒹굴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기면 난 내 몫을 다했다고 한다. 워낙 넘어지는 것도 잘 넘어진다.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산에 없는 오리온의 장점은 또 있다. 백업빅맨 장재석이 정병욱처럼 ‘식물센터’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현이 휴식을 취한 2쿼터 초반부터 장재석이 나왔다. 장재석은 착실하게 골밑슛을 넣으며 8득점을 올렸다. 수비에서도 장재석은 하승진을 육탄으로 잘 막아냈다.

2쿼터 충분히 휴식을 취한 이승현은 3쿼터 다시 힘을 냈다. 이승현은 3쿼터 후반 하승진과 더블파울로 4파울이 됐다. 다시 장재석이 나왔다. 장재석이 제대로 버텨주지 못했다면 오리온은 그대로 하승진에게 골밑을 내줬을 것이다. 둘의 협공에 막혀 하승진은 4쿼터 중반 퇴장 전까지 9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오리온은 쾌조의 3연승을 달렸다.
이번 챔프전 시리즈에서 이승현은 강백호 못지않게 궂은일을 잘해내고 있다. 압도적 신장의 하승진이 이승현 앞에서 제대로 공격을 못하고 있다. 신장의 스포츠인 농구에서 이승현의 플레이는 묘한 쾌감을 주고 있다. 바깥에서 드러나지 않는 장재석의 헌신도 오리온 3연승에 힘을 보탰다. 서태웅과 얼굴은 다르지만 상대 에이스를 잘 막고 고비 때 터지는 김동욱도 있다. 문태종의 한 방은 안경선배를 연상시킨다.
오리온은 강하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고양=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