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욱의 인간승리, 정신적 지주가 돌아왔다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6.03.27 09: 27

정현욱, 위암 극복하며 627일 만에 1군 무대 복귀
성실함으로 중무장한 투수진 정신적 지주
2013년 5월 2일 늦은 밤.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LG 선수단 버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LG는 마산구장에서 열린 NC와의 주중 3연전을 싹쓸이 당했다. 그러면서 LG는 신생팀 NC에 창단 첫 3연전 스윕을 당한 팀이 됐다. 약 20일 전 NC에 1군 무대 첫 승을 내준 것보다 큰 충격은 안고 서울로 향했다. 

이 때만해도 LG는 패배가 익숙한 팀이었다.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한 시즌도 없었다. 시즌 초반이었지만, ‘올해도 안 되는 건가’란 패배의식이 선수들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LG는 다음날 잠실 홈경기에 앞서 선수들끼리 내부회의를 열었다. 분위기를 전환시켜 서둘러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낸 이는 정현욱이었다. 정현욱은 “고개 숙이면 뭐하냐. 어차피 경기는 이기거나 지는 거 아니냐.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고개 들고 다시 해보자”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LG는 2013시즌을 앞두고 정현욱과 FA 계약을 체결했다. LG의 한 코치는 “정현욱을 데려와 불펜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우리는 정현욱을 통해 경기 외적인 것도 얻고자 한다. 내가 아는 야구선수 중 정현욱보다 성실한 선수는 없다. 삼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팀에서도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란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LG는 5월 중순부터 무서운 상승세를 탔고,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다. 2002년 이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2014시즌 초반에도 LG는 암초와 마주했다. 큰 기대와 함께 시즌에 들어갔으나 패배가 반복됐고, 순위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감독의 자진사퇴까지 겹치며 초상집 분위기에서 시즌을 치렀다. 한 달 째 꼴찌에 머물렀던 2014년 5월말, 다시 정현욱이 후배들을 불러 모았다.
“어느 팀이든 일 년에 50번은 진다. 어제 오늘 졌다고 다 끝난 것처럼 굴지 말자. 정말 포기하고 싶다면 50번 지고 나서 하자.”
그 후 LG는 거짓말처럼 상승세를 탔다. 5할 승률 ‘-16’까지 추락했다가 시즌 막바지에는 4위로 올라갔다. 비록 정현욱은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지만, LG 선수단은 정현욱의 한 마디에 힘을 얻었다. 정현욱은 7월말 팔꿈치 재활 판정을 받고 이천을 향하면서 “나도 잘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후배들까지 부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배가 포기하고 가만히 있으면 후배는 그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경기를 준비하곤 했다. 적어도 후배들에게 아무 것도 안 하는 선배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하늘은 정현욱을 돕지 않았다.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함께 시즌아웃됐다. 팔꿈치 수술이 끝났을 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가 정현욱의 머리를 강타했다. 병원에선 정현욱에게 위암으로 인해 한 번 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현욱의 야구인생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정현욱은 “수술 후 20kg가 빠졌다.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은퇴 생각도 했었다. 야구를 그만 둬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고 악몽 같았던 순간을 돌아봤다. 
정현욱은 이내 마음을 잡았다. 공을 던질 수 없는 몸으로도 매일 이천을 향했다. 보이지 않는 종착역을 향해 땀을 쏟았다. LG구단 트레이너들은 너도나도 정현욱 도우미를 자청했다. 정현욱과 이천에서 1년을 함께한 LG 박종곤 트레이너는 지난해 10월 “솔직히 처음에는 우리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선수가 포기하지 않는데 우리가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몇 년이 걸리더라도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게 하고 싶었다”며 “희망이 보이고 있다. 공도 던지고 있고, 몸도 점점 좋아진다. 내년에는 다시 잠실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양상문 감독의 한 마디도 정현욱에게 큰 힘이 됐다. 2015시즌 막바지 양 감독은 이천에서 정현욱을 만나 “공 좋다. 내년에 충분히 던질 수 있다. 너 삼성에 있을 때 투수진 대장이었다고 들었다. 내년에 올라와서 우리 팀 대장해라. 기다리겠다”고 이야기했다. 
양 감독은 지난 26일 시범경기에 앞서 정현욱을 1군으로 올렸다. 이날 정현욱은 2014년 7월 8일 이후 627일 만에 등판했다. 아웃카운트 두 개를 가뿐히 잡아내며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경기 후 정현욱은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어릴 때 처음 경기에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색했고 긴장됐다. 그래서 더 깔끔하게 던지려는 마음이 강했다. 긴장한 상태에서 어렵게 가면 더 꼬일 수 있다고 봤다. 가운데만 보고 던지려고 마음먹었는데 잘 된 것 같다”고 웃었다.
아직은 과정이다. LG는 정현욱이 정점을 찍는 시점을 정규시즌 중반으로 보고 있다. 정현욱 스스로도 “100%는 아니다. 트레이닝 파트에선 5월이 되면 100% 컨디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앞으로 2군에서 경기를 치르며 감각을 찾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LG 선수들은 정현욱을 통해 용기를 얻을 것이다. 정현욱은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나도 이렇게 던지고 있다’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포기하려는 후배가 있으면 ‘마흔에 가까운 나도 공을 던지는 데 포기하지 말자’고 해줄 수 있게 됐다. 베테랑 선수일수록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후배들에게 창피해지지 않는 길이다”고 이야기했다. 
정현욱이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LG 구단관계자는 “2013년과 2014년 우리가 상승세를 탈 때마다 정현욱 선수의 역할이 컸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범이 되면서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병마를 이겨내고 돌아온 만큼, 다시 한 번 우리 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고 전했다. / drjose7@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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