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앳되지만 특유의 폭발적인 3점슛은 여전했다. 스테판 커리(28,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도 소싯적에 잘나가는 대학생이었다.
2008년 미국대학농구 NCAA 토너먼트에서 ‘신데렐라’는 커리가 이끌던 데이비슨대학이었다. 데이비슨은 매년 토너먼트 진출자체가 힘든 무명대학이다. 고교시절 몸무게가 74kg에 불과했던 커리는 데이비슨대학도 겨우 입학했다. 커리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3학년 시절 데이비슨의 돌풍을 주도했다.
데이비슨은 중서부지구 10번 시드를 배정받았다. 1라운드서 곤자가를 82-76으로 꺾었지만 ‘우연’이나 ‘행운’ 정도로 여겨졌다. 데이비슨은 2라운드서 조지타운을 74-70으로 눌렀다. 커리의 신들린 3점슛이 계속 터지기 시작했다. 커리는 첫 2경기서 70점을 넣었다. 그래도 ‘원맨팀이 어디까지 가겠냐’는 시각이 주류였다. 데이비슨은 1969년 이후 39년 만에 16강에 올랐다. 이미 학교는 축제분위기였다.

커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위스콘신과의 16강전에서 커리는 33점을 폭발시키며 팀의 73-56 대승을 이끈다. 토너먼트 첫 3경기서 평균 30점 이상을 해낸 선수는 커리(33.3점)가 역대 네 번째였다. 이 때 부터 커리는 전미에서 모르는 선수가 없는 스타가 됐다.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이 경기는 르브론 제임스가 직접 관전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와 커리는 오하이오주 애크런 동향이다. 심지어 태어난 병원도 같다. 마침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경기가 있었던 제임스는 커리의 경기를 보러 왔다.
제임스는 “이 애(kid)를 보러 왔다. 정말 정말 좋은 농구선수다. 큰 경기에서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하는 선수다. NBA에 갈만한 자질이 있다”고 커리를 촌평했다. 이 때만 해도 커리가 NBA에서 뛸 수 있다고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임스의 발언은 엄청난 칭찬이었던 셈. 제임스는 노안이고 커리는 동안이다. 둘의 나이 차는 네 살에 불과하다. 불과 7년 뒤 커리가 NBA MVP로 성장해 제임스의 우승을 직접 가로막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이키도 몰랐다.
커리의 진정한 시험대는 캔자스와의 8강전이었다. 당시 캔자스는 마리오 챠머스, 러셀 로빈슨, 셰런 콜린스, 데럴 아서, 브랜든 러쉬 등 NBA에 진출한 스타선수들이 즐비했다. 캔자스는 마지막까지 커리를 막지 못해 고전했다. 빌 셀프 감독은 막판에 커리에게 더블팀을 가는 절묘한 작전을 성공시켜 59-57로 겨우 이겼다. 결승전까지 승승장구한 캔자스는 데릭 로즈의 멤피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마리오 챠머스는 결승전 연장전을 이끄는 기적의 3점슛으로 유명세를 끈다. 당시만 해도 챠머스가 커리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커리는 캔자스전에서 25점을 기록하며 중서부지구 최우수선수에 선정된다. 최강 캔자스를 상대로 한 그의 활약은 무명대학 무명선수의 편견을 깨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결국 커리는 2009년 NBA 드래프트서 7순위로 골든스테이트에 지명된다.
토너먼트에서의 맹활약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커리를 몰랐을 것이고, 그가 NBA 선수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커리의 선수경력에서 잊을 수 없는 ‘3월의 광란’이었다. 올 시즌 커리는 NBA 최다승, MVP 2연패, NBA 2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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