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이 고양에서 제2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고양 오리온은 29일 오후 7시 고양체육관에서 개최된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전주 KCC를 120-86으로 크게 제압했다. 오리온은 4승 2패로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2002년 이후 14년 만에 구단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 2002년 첫 우승, 짧았던 영광의 시대

오리온은 2002년 챔프전에서 서울 SK와 7차전 접전 끝에 4승 3패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5차전까지 2승 3패로 뒤졌던 오리온은 6,7차전을 내리 잡아내 우승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실업농구 동양시절부터 창단멤버였던 김병철과 전희철이 팀의 중심이었다. 2001년 3순위로 데뷔한 신인 김승현은 신인왕과 MVP를 독식하며 기염을 토했다. 여기에 최고외인 마르커스 힉스와 ‘리바운드왕’ 라이언 페리맨이 가세해 화룡점정을 이뤘다.
오리온은 프로농구 대표 인기구단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특히 김승현의 패스가 외국선수의 덩크슛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프로농구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대구에서 프로농구 관전이 하나의 문화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됐다.
오리온은 2003년 정규리그 챔피언에 오르며 2연패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TG삼보와 챔프전서 ‘잃어버린 15초 사건’이 터지며 아쉽게 우승을 내주고 만다. 김승현-마르커스 힉스 콤비도 해체수순을 밟는다. 오리온은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08년부터 4년간 10위-9위-10위-10위를 차지하며 팬들의 기대감에서 점차 멀어진다.

▲ 고양으로 연고이전 ‘암흑기 시작’
오리온은 2011년 6월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오리온은 낡은 대구실내체육관 시설 사용 문제로 대구시와 마찰을 빚었다. 때마침 고양시가 새로 개관한 체육관을 대관해주는 등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오리온은 수도권으로 이전을 결심한다.
프로농구 대표적인 인기 연고지였던 대구 팬들의 배신감이 대단했다. 가뜩이나 지방농구가 고사위기에 몰리는 상황. 오리온의 고양 이전은 프로농구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직격탄이 됐다. 대구의 많은 팬들이 프로농구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오리온의 고양 정착도 쉽지 않았다. 체육관 시설은 좋았지만 자기 동네에 프로농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팬도 많지 않았다. 텅텅 빈 체육관에서 조용하게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내 팀’이라는 확실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팀 성적도 받쳐주지 않았다. 오리온은 추일승 감독을 영입해 팀 재건에 나섰다. 하지만 2011-12시즌 8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한순간에 체질개선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 고양에서 첫 우승, 제2의 전성기 개막
추일승 감독은 차근차근 리빌딩에 돌입했다. 2011년 전체 3순위로 신인 최진수를 뽑았고, 김동욱과 김승현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013년 말도 많았던 4대4 트레이드를 통해 전태풍을 보내고 장재석을 받았다. 특유의 포워드 농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2014년 드래프트서는 전체 1순위 신인 이승현을 뽑는 행운까지 겹쳤다. 오리온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으로 급상승했다.
2013년부터 오리온은 3년 연속 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4강이 한계였다. 올 시즌 오리온은 조 잭슨, 애런 헤인즈 등을 선발해 드디어 마의 고지를 넘었다.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친 오리온은 6강에서 동부, 4강서 모비스를 꺾고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챔프전에서 정규리그 챔피언 KCC마저 물리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고양 팬들은 매 경기 가득 체육관을 메웠다. 김민구가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도 쏟아졌다. 그만큼 팀에 애정이 생겼다는 의미다. 이제 고양은 프로농구서 새로운 농구의 메카로 떠오르게 됐다. 오리온은 고양 연고이전 5년 만에 드디어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