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그는 없다. 추일승 감독이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고양 오리온은 29일 고양체육관에서 개최된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서 전주 KCC를 120-86으로 눌렀다. 오리온은 4승 2패로 챔피언 왕좌에 올랐다. 무려 14년 만에 이뤄낸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우승이다.
시리즈 내내 냉정한 승부사의 모습을 유지했던 추 감독이다. 우승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데뷔 13년 만의 첫 우승에도 불구 추일승 감독은 담담했다. 그 동안 그가 맞서 싸운 편견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 비주류 출신에 우승 못하는 감독
추일승 감독을 늘 따라다닌 꼬리표는 소위 말하는 비주류라는 것. 연고대 출신이 주름잡는 농구계에서 홍익대 농구부를 나온 추일승 감독은 돋보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기아시절에도 그는 강동희, 허재처럼 스타가 아니었다. 기아에서 은퇴한 뒤 그는 매니저로 출발했다. 지도자 생활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항상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환경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추일승 감독은 상무 코치 및 감독을 거쳐 2003년 KTF에서 프로감독으로 데뷔했다. 이번에는 ‘늘 우승문턱에서 주저앉는 감독’이란 새로운 편견이 생겼다. KTF는 2006-07시즌 챔프전까지 승승장구했다. KTF는 7차전서 68-82로 패하며 우승을 내준다. 추일승 감독은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똑같은 기회서 우승한 유재학 감독은 5회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추일승 감독은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전략은 좋으나 우승하지 못하는 감독’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올 시즌 우승으로 추일승 감독은 13년 동안 짊어졌던 마음의 짐을 덜었다. 의외로 그는 담담했다. 눈물을 왈칵 쏟을 줄 알았건만 차분하게 우승소감을 전했다.
추 감독은 “우승하면 원 없이 울고 싶었다. 점수 차가 많이 나서 울음도 나지 않았다. KTF를 마치고 2년 간 공백 있을 때 ‘다시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기회를 준 얻은 것 같다. 끝을 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올 시즌 이승현이란 좋은 선수가 와서 2년차 답지 않게 해줬다. 우승을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고백했다.
노력하는 지도자는 드디어 13년 만에 우승으로 결실을 맺었다. 추 감독은 “주류냐? 비주류냐? 우승을 못했다는 것이 날 항상 따라다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다만 내가 그 과정에서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어디 나왔다는 것은 중요치 않다. 오히려 연세대, 고려대 나오지 않은 사람이 주변에 더 많다. 나도 주류다. 부끄럽지 않게 노력한다면 죽을 때까지 우승을 못해도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올해 좋은 선수들을 만나 우승했기에 두 배로 기쁘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 ‘한국판 스몰볼 완성’ 전략가 추일승
한국농구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유행하는 전술이 있으면 너도 나도 따라하기 바쁘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최신전술을 공부하고 자기 것으로 습득하려는 노력을 하는 감독은 프로에서도 극히 드물다. 추일승 감독은 가장 열린 자세로 신문물 습득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이다.
올 시즌 고양 오리온이 구사한 농구는 현재 NBA를 강타하고 있는 ‘스몰볼’이다. 정통센터가 없어도 5명이 골고루 볼을 만지며 기회가 되면 과감하게 슈팅을 날린다. 프로감독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통념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구사할 수 없는 전술이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추일승 감독은 정통센터 대신 포워드 애런 헤인즈를 뽑았다. 가드로 조 잭슨을 데려왔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추일승 감독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한국판 스몰볼’의 완성이었다.
우승 후 추일승 감독은 “우리가 하는 농구에 신뢰와 자부심을 가졌다. 빅맨이 없어도 (이)승현이가 잘해줬다. 재밌는 농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몰볼이 농구트렌드다. 우리 선수들 자원을 최대한 극대화하려고 했다. 그것이 우리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추일승 감독이 프로지도자 내내 밀었던 ‘포워드 농구’가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현역시절 추일승 감독은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었다. 지도자로서 철학도 스타출신들과 남다르다. 그는 “내 농구를 공산농구라고 하더라. 기아에서 선수은퇴 후 매니저를 할 때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못 뛰는 것을 봤다. 주인공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뛰면 재밌는 농구가 되지 않는다. 한 두 선수에 의해 경기 지배된다면 그 선수들이 부상당하면 팀이 망가진다. 후보들도 경기에 기여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공수에서 분담할 수 있는 그런 농구를 하고 싶었다”고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추일승 감독의 말처럼 오리온은 장재석, 최진수, 이현민, 문태종 등 어느 팀보다 많은 벤치자원을 총동원했다. 4쿼터 중반 승리를 확신한 추일승 감독은 김도수, 김강선 등 그 동안 많이 뛰지 못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추일승 감독의 지도철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올 시즌 우승으로 추일승 감독은 프로농구 최고명장으로 올라섰다. 당분간 오리온의 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고양=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