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불펜의 하루, 쉼 없는 몸 풀기 반복
선발진 부진으로 구원투수 부담 가중돼
야구에서 구원투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굵은 땀을 흘린다. 바로 불펜이다.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공이 전부가 아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경기에 나설지 모르는 긴장감을 안고 불펜에서 하염없이 몸 풀기를 반복한다.

특히 선발투수들의 거듭된 부진 탓에 구원투수를 집중 투입하는 한화의 불펜은 그 어느 팀보다 바쁘다. 매경기 분주하게 쉼 없이 움직인다. 불펜에 있는 투수 전원이 상시대기한다. 리그 최다 경기당 평균 5.2명의 구원투수를 투입하는 한화 불펜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살펴봤다. 지난 8일 마산 NC전에서의 풍경이다.
▲ 1회부터 분주한 한화 불펜
한화 선발 김민우는 1회 1사 후 이종욱에게 볼넷을 내준 뒤 나성범에게 좌측 1타점 2루타를 맞았다. 그때부터 한화 불펜이 분주했다. 불펜 포수들이 후다닥 장비를 챙기며 재빨리 움직였고, 우완 이재우와 좌완 송창현이 양 쪽에서 공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김민우가 추가 실점 없이 위기를 넘기자 투수들은 투구를 중단하며 점퍼를 입었다.
그러나 2회가 시작되자 송창현은 포수를 세워 놓고 하프 피칭으로 30개가량 공을 던졌다. 언더핸드 정대훈도 그의 옆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김민우가 2회를 실점 없이 막았지만 3회에는 송창현과 더불어 장민재가 등장했다. 하프 피칭으로 20개 정도 공을 뿌리면서 몸을 풀었지만, 시선은 그라운드 안으로 향해 있었다.
경기는 긴박하게 흘러갔고, 투수들은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봤다. 그 와중에도 팔을 돌리거나 공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감각 유지를 위해 힘썼다. 김민우가 추가 1실점으로 막은 뒤 3회를 끝냈지만 4회에는 장민재와 송창현이 계속해서 몸을 풀었다. 김민우가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자 두 투수 모두 불펜 투구에 속도를 높였다.

▲ 1시간 넘게 대기하다 등판
결국 선발 김민우는 4회 2사까지 한계였다. 불펜에서 기약 없이 대기하던 송창현이 마침내 마운드에 올랐다. 오후 8시쯤이었다. 6시40분부터 몸을 풀었으니, 1시간 넘게 불펜에서 대기하다 나온 것이다. 몸을 데웠으나 등판상황이 되지 않아 땀이 식었고, 다시 또 공을 던지며 달구는 과정을 2~3번씩 반복한 뒤였다. 전력은 아니지만 불펜에서 최소 50구 이상을 던졌다.
송창현이 마운드에 올라간 뒤에는 또 다른 좌완 김경태가 새롭게 불펜 투구를 시작했다. 1회 몸을 풀었던 이재우 역시 다시 점퍼를 벗고 공을 던졌다. 이재우는 4회초 종료 후 공수교대 때에도 투구를 멈추지 않았고, 주자 있을 상황을 대비해서 세트 포지션으로만 던졌다. 5회 송창현에 이어 장민재 그리고 정대훈이 차례로 등판하며 불펜 인터폰이 쉼 없이 울렸다. 이상군 투수코치가 선수들을 독려해가며 불펜 분위기를 끌었다.
5회 위기가 계속 되자 불펜 필승맨 박정진도 등장했다. 경험이 많은 베테랑답게 투구 템포를 빠르기 가져가지 않고, 가볍게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며 던졌다. 그러나 스코어가 1-5로 벌어지자 박정진은 몸 풀기를 멈췄다. 6회 정대훈에서 김경태로 투수가 바뀌었고, 김경태가 나간 불펜 자리에 이재우가 다시 또 투구를 시작했다. 박정진과 김경태가 공을 던질 때 자리가 없던 이재우는 홀로 공을 벽에 던지며 리듬을 유지했었다. 1회부터 6회까지 한화 불펜이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움직인 반면 재크 스튜어트가 나온 NC 불펜은 6회까지 미동도 없었다.

▲ 몸만 풀다 끝난 권혁·정우람
이재우는 7회 1사 1루에서 김경태로부터 마운드를 넘겨받아 등판했다. 불펜에는 다시 박정진이 나타나 서서히 몸을 달구기 시작했다. 한화가 1점을 얻어 2-5, 3점차로 좁히자 박정진의 등판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한화가 8회초 2점을 수확하며 4-5 한 점차까지 압박하자 박정진과 함께 마무리 정우람까지 불펜에서 투구를 시작했다. 역전에 대한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역전에 실패했고, 8회말 시작과 함께 박정진이 마운드에 올랐다. 역전이 되지 않아서인지 정우람 대신 권혁이 새롭게 불펜 투구에 들어갔다. 박정진은 수비 실책에도 흔들림 없이 병살을 유도하며 8회 1이닝을 깔끔하게 책임졌다. 박정진이 마운드에서 던지는 동안 권혁은 불펜에서 분주히 팔을 돌려가며 공을 던졌다. 당장이라도 마운드에 달려갈 기세였다.
하지만 권혁에게 등판 기회는 없었다. 한화는 9회초 득점없이 물러났고, 경기는 4-5 패배로 끝났다. 결국 권혁·정우람은 몸만 풀다 끝났다. 두 투수 모두 20개 안팎을 던졌지만 기록으로 남는 게 아니다. 구원투수들의 가치와 팀 공헌도를 눈에 드러난 성적만으로 평가하기 힘든 이유. 이날 한화 불펜에 남은 기록은 6명의 투수들이 합작한 4⅓이닝 76구 2실점이었다. 선발 김민우를 제외한 당일 경기 출장명단에 오른 투수 9명 중 김재영을 빼고 8명이 전부 몸을 풀었다. /waw@osen.co.kr
[사진] 창원=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