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역투, 시즌 최고 ‘모범 FA’ 등극 기세
헌신과 절박함, 베테랑의 품격 느끼다
공은 생각대로 가지 않았다. 생각대로 가더라도 맞아 나갔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제 안 되나”라는 주위의 시선을 참는 것도 힘들었다. 리그 최고의 전천후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채병룡(34, SK)은 마운드에서의 우직한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흔들리고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3년, 팬들에게 비쳐진 채병룡의 모습은 그랬다.

2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몸 상태는 자신이 있었다. ‘신체적으로’ 채병룡은 그 자리 그대로에 있었다. 그러나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도대체 왜 안 될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하자 성적은 떨어졌다. 2013년 1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7.97로 부진했다. 2014년에는 8승을 거뒀지만 평균자책점은 6.37에 이르렀다. 어디 내놓을 성적은 아니었다. 이름 석 자를 생각하면 더 그랬다.
스스로의 회상대로 팀에 도움이 안 되고 패전처리로도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효자 FA’가 된 지금의 채병룡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사고의 전환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채병룡은 “그때 야구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안 되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라면서 “그때 경험에서 많이 느꼈다”라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2.0’ 버전이 된 채병룡은 다시 날아오르고 있다.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기분이다.
채병룡은 올 시즌 초반 SK 불펜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5경기에서 7⅓이닝을 던지며 1승, 평균자책점 0의 호투 릴레이다. 7⅓이닝 동안 허용한 안타는 6개뿐이다. 언제든지 1이닝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장점과 매력은 그대로다. 정우람(한화)과 윤길현(롯데)이 떠나 현저히 힘이 떨어진 SK 불펜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것은 채병룡이 있기에 가능하다. 122억 원의 공백은, 역설적으로 ‘3년 10억5000만 원’ 계약의 채병룡이 분투하며 메워내고 있다.
코칭스태프의 극찬도 이어진다. 김원형 SK 투수코치는 “워낙 꾸준하고 성실한 선수다. 올해는 준비를 잘했다. 현역 때부터 후배로 있었지만 항상 고마운 선수다. 무엇보다 팀을 위해 희생하려는 의지가 강한 선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추격조로 컨디션 관리가 힘들었던 지난해보다는 상황이 좋아졌다. 초반치고 다소 많이 나가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채병룡은 “힘들지는 않다. 팀에서 관리를 잘 해주지 않는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러면서 채병룡은 “기쁘다”라고 이야기했다. 채병룡은 “사실 이 나이가 되고 나니 보직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더라. 어느 곳에나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다”라고 활짝 웃었다.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절박함은 공의 위력을 배가시킨다. 채병룡은 “이제는 ‘맞으면 어때’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베테랑이면 베테랑다운 투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 제대 후 부진했을 때부터 가졌던 절박함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채병룡은 “지금껏 던진 날보다 앞으로 던질 날이 이제는 더 적다. 매 경기, 매 타자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지막 타자가 될지 모르는 눈앞의 선수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채병룡은 “오히려 지금은 마음이 편해졌다”라고 말했다. 젊을 때는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타자를 상대하는 그 자체의 재미에 푹 빠졌다. 그것이 선발로서든, 필승조로서든, 혹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상황이든 상관은 없다. 채병룡이 최선을 다하는 이유다. 그 절박한 마음가짐이 위기의 SK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