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했던 김광현(28, SK)의 프로 첫 등판은 2007년 4월 10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304일이 지난 2016년 4월 24일, 김광현은 통산 100승을 달성하며 ‘대투수’를 향한 첫 관문을 넘어섰다.
안산공고를 졸업하고 SK의 2007년 1차 지명을 받은 김광현은 24일까지 통산 220경기에 출전해 100승57패 평균자책점 3.36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우뚝 섰다. 데뷔 첫 해 3승을 시작으로 2008년 16승, 2010년 17승을 거두면서 화려한 선수 경력을 열었다. 2년차인 2008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자타 공인 KBO 리그의 얼굴마담으로 활약했다.
통산 세 차례(2007, 2008, 2010)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 굵직굵직한 국제 대회에서도 활약하며 국위 선양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재활을 하는 등 마냥 순탄하게만 흘러온 야구 인생은 아니었다. 데뷔부터 100승까지, 3304일의 시간을 간단하게 사진으로 정리해봤다.


김광현은 2007년 4월 10일 문학 삼성전에 선발로 등판하며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었다. 고교 무대를 평정한 특급 에이스 투수 중 하나였던 김광현은 신인 때부터 일찌감치 큰 기대를 모았다. 초반에는 1·2군을 오고 가기도 했지만 팀이 꾸준히 키우는 전략주였다. 데뷔전에서는 4이닝 동안 8피안타(1피홈런) 2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데뷔 후 첫 피홈런은 양준혁에게 허용했다.

김광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은 역시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이었다. 당시 1승2패로 밀리고 있었던 SK는 당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다니엘 리오스가 두산의 선발로 예고되자 초비상이 걸렸다. 반드시 리오스를 꺾어야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상황. 그때 선발로 낙점한 김광현이 리오스라는 골리앗을 꺾으며 SK를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김광현 개인적으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기로 뽑힌다. 당시 홍성흔을 삼진으로 처리하고 기뻐하는 김광현이다.

2007년 경험을 통해 부쩍 성장한 김광현은 2008년 다승왕 레이스에도 합류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과시했다. 그 기량을 인정받아 걸출한 선배 스타들과 함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해 기적 같은 전승 금메달에 일조했다. 김광현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유독 강했고 특히 준결승에서는 역투로 결승행 발판을 놓으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일본 킬러라는 별명도 그때 생겼다.

2008년 MVP, 2009년 평균자책점 1위 등 투수 부문의 굵직한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었던 김광현은 2010년 개인 최다승인 17승과 2.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섰다. 2010년에는 개인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4차전 마무리투수로 등판해 경기를 끝내고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그러나 마냥 오르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광현은 2011년부터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결정적인 어깨 통증이 경력의 발목을 잡았다. 수술을 권유하는 쪽도 있었지만 김광현은 재활을 선택하며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광현은 2011년 17경기에서 4승, 2012년 16경기에서 8승에 머물렀다. 평균자책점은 모두 4점대였다.

2013년 10승을 거두며 재기의 조짐을 보인 김광현은 통증이 완벽히 사라진 2014년부터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2014년 28경기에서 173⅔이닝을 던지며 13승9패 평균자책점 3.42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176⅔이닝을 소화하며 14승6패 평균자책점 3.72로 에이스의 완벽한 귀환을 알렸다. 2015년 9월 4일에는 KBO 리그 역대 27번째 1000탈삼진 고지를 밟기도 했다. 김광현의 1000탈삼진 기념식 사진.

지난해 막판 승수 페이스가 떨어지며 아쉽게 100승 달성을 올해로 미룬 김광현은 시즌 초반 4경기에서 2승2패를 기록하며 100승에 1승만을 남겨뒀다. 많은 관계자들이 ‘아홉수’를 걱정하던 상황에서 24일 인천 NC전 또한 접전이었다. 그러나 2-2로 맞선 7회 박재상의 결승타가 터졌고, 9회 박희수가 김광현의 승리를 지키며 100승이 만들어졌다. KBO 통산 26번째, 좌완으로는 3번째, SK 단일 프랜차이즈로는 첫 대업이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