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야구선수들이 자주 되묻는 말이다. 그만큼 감독의 말 한마디가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어떤 선수들은 자신의 기사에는 무관심해도 감독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궁금해 한다. 선수는 감독의 어떤 말을 하느냐에 확 달라진다. 없던 힘도 솟아날 만큼 큰 동기부여가 되는가 하면, 오히려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베테랑 감독은 "감독은 늘 말조심을 해야 한다"며 말을 아낀다.
한화 김성근(74) 감독은 누구보다 말 한마디가 주는 무게감이 크다. KBO리그 최고령 감독으로 야구계를 대표하는 저명인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화가 시즌 초반부터 3승16패 승률 1할5푼8리로 독보적인 10위 자리까지 떨어지자 그의 말 한마디에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김 감독의 말이 기사화되면 선수들도 다 본다.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김 감독은 지난 20일 사직 롯데전을 앞두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어쨌든 결과가 안 좋으니 감독으로서 미안하다. 팬들이나 선수들, 선수 가족들에게도 미안하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이튿날부터 김 감독은 변명 비슷한 말을 자주 했다. "투수들의 연투가 안 된다", "작년만 못하다", "쓸 투수가 없다" 등의 내용이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군말없이 노력하고 있는 선수들을 맥 빠지게 하는 내용이었다.
김 감독은 수시로 선수단과 미팅을 갖는다. 외부에서 비판하는 여론이 나올 때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차원에서 자주 마련되는 자리. 최근에는 그 빈도가 조금 줄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일같이 미팅을 가졌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직 의식이 안 되어있다"는 것이다. 감독과 선수단의 미팅은 경직될 수밖에 없는 자리인데 타박하는 이야기만 듣는 선수들이 과연 얼마나 동기부여 될 수 있을까.
한화 선수들은 지난주 단체로 삭발까지 하며 부진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 감독도 선수단 삭발 이튿날 머리를 짧게 정리했다. 그러나 머리 길이만 짧아진다고 해서 한마음이 되는 건 아니다. 진심 어린 소통으로 내부 신뢰부터 회복해야 하나가 될 수 있다. 겉으로 비쳐 지는 건 극히 일부분이다.
최근 한화를 상대하는 팀들의 현장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들이 있다. "한화 투수들이 1구 1구 공 던질 때마다 벤치를 본다. 야수들도 무슨 실수를 하면 벤치 눈치부터 보는데 제대로 야구를 할 수 있겠나". 상대 선수들도 경기 도중 덕아웃에서 "쟤네들 또 벤치 본다"고 수군거린다. 다른 팀들도 이젠 훤히 보일 정도로 한화 선수들은 잔뜩 움츠러 들어있다. 믿음은 없고, 자신감도 사라졌다.
이제 시즌 19경기밖에 하지 않았다. 앞으로 125경기가 더 남아있다. 한화 선수 구성상 전력만 재정비하면 앞으로 충분히 치고 올라갈 수 있다. 관건은 내부 신뢰와 자신감 회복이다. 김성근 감독도 외부의 비판 여론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내부 선수단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신뢰를 쌓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깨지는 건 한순간이다. /한화 담당기자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