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누구나 ‘혁신’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정작 ‘나’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가진 게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52년의 역사, 가진 것 많은 말리부가 ‘많이’ 달라졌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많이 바뀐 건 나 자신이다. 변화, 말리부로부터’이다.
9세대 말리부의 변화는 그 정도가 심해 이전 세대 소유자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디자인에서부터 파워트레인 구성에까지 아낌없이 미련을 떨쳤다. 우직하게 유지해 오던 ‘미국 스타일’을 버렸다. 그랬더니 꽤나 매력적인 차로 변해 있었다. 100년이 넘은 쉐보레 브랜드가 ‘말리부’를 기점으로 작정하고 환골탈태 했다. “가장 많이 바뀐 나 자신”을 입증하고자 했다.
변화의 시작은 ‘버리기’다. 한국지엠 디자인센터 스튜어트 노리스 전무는 “반세기를 이어온 디자인 헤리티지를 버렸다”고 말했다. 버리지 않고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선을 사로잡는 실루엣이 탄생했다. 혹자들은 ‘미국차 같지 않다’고 표현한다. 왠지 각지고, 왠지 커 보이고, 왠지 반짝거릴 것 같은 요소들이 ‘신형 말리부’에서는 사라졌다.

외모를 확 바꾼 건 눈이 먼저 알아봤다. 둔탁하게 각진 모습은 말끔히 사라지고 유려한 곡선이 자리잡았다. 세단의 종전 관념을 버리고 스포츠 쿠페 스타일을 채택했다. 막힘이 없으니 보는 이의 눈이 편해졌다.
쿠페가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쿠페를 만들지는 않는다. 공간 활용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라인을 우선하다 보니 내부 공간이 압박을 받는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매끈한 선도 포기해야 한다.

▲실루엣과 공간, 두 마리 토끼를 노린 ‘다이어트’
‘올뉴 말리부’는 첨단 기술력을 동원해 이를 해결했다. 살을 빼면 같은 키도 커 보인다.
쿠페 실루엣을 위해서는 전장을 늘려야겠는데 고민이 생긴다. 전장이 길어지면 중량도 커지는 게 수순이다. 이건 막아야 한다. 쉐보레는 소재 경량화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고강도 경량 차체와 초고장력 강판 비중을 늘려 체중을 130kg이나 줄였다. 신형 말리부 1.5 터보 모델의 공차중량 1,400kg은 쏘나타 1.6터보의 1,455kg, 그랜저 HG 2.4의 1,575kg보다 많이 가볍다.
이제 중량 신경 쓰지 않고 전장을 늘릴 여유가 생겼다. 쿠페 스타일에 수반 되는 공간의 압박을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60mm를 서둘러 키웠다. 배기량과 가격대로 보면 현대차 쏘나타와 비교되는 게 말리부이지만 전장(4,925mm)은 그랜저(4,920mm)보다 길다.
전장은 60mm 늘어났는데, 휠베이스는 93mm가 길어졌다. 차량의 실내 공간은 휠베이스가 결정한다. 어렵게 얻은 여유분을 실내 공간, 특히 뒷좌석에 할애했다. 신형 말리부의 뒷좌석에서는 이제 사장님 자세도 가능했다. 대신 앞뒤 오버행은 줄었다. 트렁크 공간이 시원스럽지 않은 이유가 됐지만 그래도 골프백 4개는 들어간다.
‘달라진 말리부’는 실내에서 더 강하게 어필한다. 하나의 독립된 장치를 연상시키는 대시보드는 쉐보레 브랜드의 그 어떤 차에서도 본 적이 없다. 지엠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캐딜락에서도 시도 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다. 대시보드만 따로 떼어내 상품화 해도 될 정도로 독자적이다. 공조기 조절 스위치를 최소화 하고 8인치 고해상도 풀컬러 터치 스크린 디스플레이를 부각시켰다. 스마트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친근한 구성이다. 쉐보레 ‘마이링크’,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해 커넥티트 카를 지향했고 포켓 형태로 설치 된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스템은 보관과 충전을 한번에 해결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손때 묻을까 두려운, 반짝거리는 플라스틱이 사라진 점이다. ‘미국 스타일’을 버렸더니 ‘유럽향’이 느껴졌다.

시승에는 2.0리터 터보 모델이 동원 됐다. 다운사이징의 상징 같은 ‘1.5리터 터보’를 경험해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자연흡기를 버렸다는 자체가 분명한 변화다. 2.0리터 터보 엔진은 캐딜락 CTS와 ATS에 적용된 것으로 최고 출력 253마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36.0kg.m이다.
제원상의 스펙은 퍼포먼스급이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출발해 중미산 천문대를 돌아오는 왕복 117km 구간에서 보여준 신형 말리부는 그러나 퍼포먼스 보다는 안락함을 추구하고 있었다. 거침없는 돌격대의 모습 보다는 부드러운 주행에 맞춰 세팅 돼 있었다. 세팅이 그렇다고 내재 된 성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운전자가 원하는 시점에서는 충실히 야성을 드러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맛은 떨어졌지만 언제든 발톱을 드러낼 준비는 갖추고 있었다.
최근 국내 승용차들에서 이슈가 됐던 주요 부품들, 즉 조향장치와 서스펜션에서는 상대적 우위에서 출발했다. 스티어링 휠은 보쉬의 R-EPS 시스템을 적용했고, 전륜 맥퍼슨 스트럿 타입 서스펜션, 후륜 멀티링크를 장착했다. 부드러운 주행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서스펜선의 단단하게 잡아주는 맛은 덜했지만 핸들링은 정확하게 운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올뉴 말리부에는 안전운전을 지원하는 11가지 기술이 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옵션에 따라 최대 11가지 안전사양을 갖출 수 있다. 앞 차와의 거리를 알아서 유지하는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이탈 경고 및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 사각지대 및 차선 변경 경고 시스템, 전방 충돌 경고 및 전방 거리 감지 시스템, 고속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 저속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 시스템, 자동 주차 보조 시스템, 후측방 경고 시스템, 스마트 하이빔, 8에어백 등이다. 모두 언급하기도 숨차다. 하나하나 탐나는 사양들이긴 하지만 모두 갖추려면 3,500만 원이 넘는 찻값을 각오해야 한다.

신형 말리부의 옵션을 제외한 모델 별 가격은 1.5L 터보 LS 2,310만 원, LT 2,607만 원, LTZ 2,901만 원이며, 2.0L 터보는 LT 프리미엄팩 2,957만 원, LTZ 프리미엄팩 3,180만 원이다(부가세 포함, 개별소비세 인하 분 적용).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