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G서 53이닝 소화, 개인 첫 200이닝 페이스
공격적 승부 주효, 체력안배 효과도 톡톡
"30경기 나간다고 치고, 평균 6이닝을 던진다고 하면 180이닝이다. 그 정도는 꼭 던지고 싶다"

SK 에이스 김광현(28)은 시즌을 열며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있지만 이미 자신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끝났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의 목표는 이루고 싶다고 했다. 많은 이닝 소화였다. 그리고 김광현은 지금까지 그 목표를 아주 멋지게 이뤄내고 있다.
김광현은 14일까지 올 시즌 8경기에서 5승3패 평균자책점 3.06을 기록 중이다. 개막전이었던 1일 인천 kt전에서 4⅔이닝 7실점으로 무너진 것을 빼면, 나머지 7경기의 평균자책점은 2.05에 불과하다. 올 시즌 토종 투수 중에서는 동갑내기 경쟁자 양현종(28·KIA)와 함께 가장 좋은 페이스다.
특히 최근 7경기에서는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며 확실한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팀의 승패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임무는 확실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7경기에서 7이닝 이상 소화도 5번이나 이르렀다. 그렇다고 투구수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다. 이 기간 김광현의 총 투구수는 722개로 경기당 평균 103개 수준이다.
덕분에 벌써 53이닝을 소화해 이 부문 리그 2위에 올라있다. 외국인 에이스급 이닝 소화다. 보통 에이스들은 한 시즌을 건강하게 뛰면 최소 30경기 정도는 등판한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199이닝 소화가 가능하고, 1~2경기 더 뛸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200이닝도 소화가 가능하다. 김광현의 한 시즌 최다 이닝 소화는 2010년 193⅔이닝이었다. 개인 최다 페이스다.
김광현은 이에 대해 "올 시즌 목표대로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라면서 "아직 시즌 초반이지 않은가. 기록적인 부분은 의식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광현의 올 시즌 투구 내용을 뜯어보면 이 페이스를 이어갈 것이라는 충분한 기대감을 품을 만하다. 볼넷이 줄어들었고, 좀 더 공격적인 투구 내용으로 완급조절까지 하고 있다.
김광현은 지난해 176⅔이닝을 소화해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잡았다. 2년 연속 170이닝 소화로 어깨 통증에서는 완전히 벗어났음을 알렸다. 이런 김광현의 지난해 9이닝당 볼넷 개수는 3.36개였다. 이닝당 투구수는 16.4개였다. 특급 투수로 평가받는 것치고 볼넷 비율과 이닝당 투구수는 조금 많았던 편이었다. 그러나 2014년의 9이닝당 볼넷 개수(4.20개)와 이닝당 투구수(17.3개)보다는 조금 나아진 수치였다.
올해는 더 좋은 기록이다. 올해 김광현의 9이닝당 볼넷 개수는 2.38개, 이닝당 투구수는 15.3개다. 그렇다면 김광현의 제구가 갑자기 좋아진 것일까. 김광현은 이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다. 김광현은 "이전까지는 삼진을 잡겠다는 생각,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라고 말했다. 그런 투구내용을 보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유인구를 많이 던져야 하고, 상대가 속지 않으면 볼넷이나 투구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맞더라도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승부를 하고 있다. 실제 김광현의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지난해 8.15개에서 올해 7.30개로 줄었다. 삼진보다는 빠른 시점에서 승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타도 맞고, 때로는 장타도 허용하고 있지만 확실히 투구수는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초반에 흔들리면 중반 이후까지 경기 내용에 영향을 받는 모습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지난 12일 인천 두산전도 그랬다. 초반 고전했던 김광현은 2회 2루타 두 방을 맞으며 선제 2실점했다. 3회에도 득점권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숨을 고른 김광현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고 4회부터 7회까지는 흠잡을 곳 없는 피칭으로 꿋꿋하게 마운드를 지켰다. SK는 김광현의 호투를 등에 업고 5-2로 역전승했다.
중반 이후 흔들리지 않는 것은 경기 중 이어지는 체력 안배와도 연관이 있다. 올해 확실한 서드피치로 자리잡은 커브, 그리고 포피치 완성을 알리는 체인지업이 그 중심에 있다. 커브는 이제 결정구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다. 여기에 체인지업도 스트라이크 존에 형성되는 비율이 높아지며 상대의 타이밍을 뺏거나 적어도 파울을 유도하는 구종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김원형 SK 투수코치는 "김광현은 빠른 공과 빠른 슬라이더를 던진다. 불펜 피칭에서도 패스트볼만 연달아 던지라고 하면 힘들어서 못 던진다. 하지만 느린 커브와 힘이 덜 들어가는 체인지업을 섞으면서 스스로 체력 안배를 하고 있다"라고 흡족해했다. 여기에 빠른 공까지 구속 차이를 두며 영리한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143km의 공이 오다, 갑자기 150km에 이르는 강속구가 들어오면 같은 구종이라도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에이스는 확실히 진화했다. 숫자로 드러나는 이닝에서 그 진화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