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경기 삼진왕, 시즌 출발 지연
자신감 장착, 또 하나의 거포 탄생 기대감
대개 거포와 삼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갖다 맞히는 스윙으로는 타구를 멀리 보내기 힘들다. 방망이를 힘껏 돌리다 보면 정확도가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삼진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 팀 내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라면 더 그렇다.

SK 거포 기대주인 최승준(28)도 그런 절차를 겪었다. 정상호의 FA 보상 선수로 올해 SK 유니폼을 입은 최승준은 2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는 잠재력을 주목받았다. 구장 상황을 십분 활용하기 위한 SK의 전략적 기대가 담겨져 있는 지명이기도 했다. 전지훈련 때도 큼지막한 타구를 여러 차례 날리며 기대를 모았다. 타격폼도 좀 더 간결하게 수정했다. 기대가 컸다.
그러나 막상 시범경기에 들어가자 삼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5경기에서 40타수 동안 삼진이 무려 25개였다. 타석의 절반은 삼진으로 끝났다는 의미였다. 타율은 1할에 불과했고 리그에서 가장 많은 수치로 ‘시범경기 삼진왕’의 불명예를 쓰기도 했다. 자연스레 자기스윙이 나오지 않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안타까움이다.
이런 부작용은 시즌 초반까지 이어졌다. 결과가 좋지 않다보니 벤치에서는 적극적으로 중용하기가 어려웠다. 제한된 기회 속에 타격감이 올라오기는 더 힘들었다. 결국 경기력 관리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다. ‘8번 지명타자’라는 확실한 기대치가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너무 빨리 찾아온 2군행이었다.
하지만 한 차례 2군행이 득이 됐다. 차분히 자신감부터 되살렸다. 2군 11경기 성적은 타율 2할2푼9리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2군 코칭스태프는 최승준이 스윙의 자신감을 찾았다고 판단했다. 삼진보다는 볼넷을 더 많이 고를 정도로 침착함도 갖춰가기 시작했다. 최승준과 같은 거포 자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운 최승준은 1군에 올라왔다. 그리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징적인 장면은 18일 나왔다. 롯데와의 경기에서 1-3으로 뒤진 7회 무사 만루 기회에서 SK는 최승준을 대타로 기용했다. 믿음은 적중했다. 최승준은 호투하던 롯데 선발 조쉬 린드블럼의 초구 슬라이더를 잡아 당겨 좌측 담장을 넘기는 대타 역전 만루포를 터뜨렸다. 초구였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방망이를 힘껏 돌렸다. 타구는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는 이날 경기의 결승타가 됐다.
최승준은 1군에 다시 올라올 당시 “타격감은 많이 좋아져 지금은 괜찮은 상태다. 이제 타구를 앞으로 보내는 일만 남았다”라고 웃었다. 여전히 기회는 제한적이었지만 서서히 잘 맞은 타구들이 나오고 있다. 1군 합류 후 홈런 2개를 기록했고 타율은 2할8푼1리까지 올라왔다. 대타 타율은 5할에 이른다.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 등 결과를 두려워했다면 이날 결과는 나올 수 없었다. 최승준도 경기 후 “부담감보다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다. 최근 삼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부분이 좋은 감을 유지하는 데 큰 몫을 하는 것 같다”고 자신감을 비결로 뽑았다. 그 자신감은 최승준의 힘을 배가시키는 가장 큰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최승준이 좋은 감을 유지한다면 SK의 타순 전략은 폭이 넓어진다. 상황에 따라 지명타자로 출전할 수도 있고, 경기 중·후반 상대 마운드를 압박할 수 있는 대타 카드로는 그만이다. 올 시즌 좌완을 상대로 유독 고전하고 있는 박정권과 번갈아가며 기용할 여지도 생긴다. 짐을 나눠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최승준의 시즌은 지금 막 시작됐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