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뛰었던 정들었던 땅이었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롯데 핵심 불펜 요원인 윤길현(33)이 1점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윤길현과 SK는 각별한 관계다. 2002년 프로에 데뷔한 이래 지난해까지 SK에서만 통산 495경기에 뛰었다. 한국시리즈 우승도 세 차례나 경험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그런 윤길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FA 계약을 맺으며 새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 윤길현에게 이번 주중 3연전은 첫 인천 방문이었다. 윤길현은 19일 경기를 앞두고 “여기서 14년을 뛰었지만 3루측 불펜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었다. 완전히 경기장이 다르게 보이더라”라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주중 3연전 첫 경기를 앞두고는 옛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제는 적이었다.

공교롭게도 3연전 첫 등판이 매우 중요한 시기에 이뤄졌다. 롯데는 7회까지 선발 브룩스 레일리의 호투에 힘입어 2-1로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9회 손승락에 앞서 8회를 책임질 선수로 롯데 벤치는 윤길현을 선택했다. 출발은 좋았다. 대타 이현석을 헛스윙 삼진으로, 이진석을 역시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며 아웃카운트 두 개를 쉽게 잡았다. 하지만 그 다음 상황이 문제였다.
타석과 대기타석에는 윤길현과 동고동락을 같이 한, 너무나도 윤길현을 잘 알고 있는 박정권과 최정이 버티고 있었다.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됐고 불길한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박정권에게 던진 5구째 146㎞ 빠른 공이 몰리며 가운데 담장을 살짝 넘기는 홈런으로 이어졌다. 허탈한 동점 허용이었다.
롯데 벤치는 윤길현을 그대로 밀고 나갔지만 최정에게도 역시 5구째에 결정구인 슬라이더(133㎞)를 던지다 역시 중월 솔로홈런을 얻어맞고 역전을 허용했다. 첫 인천 방문은 그렇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끝났다. 그나마 타선이 9회 역전에 성공해 승리를 거둔 게 다행이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인천=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