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지금이 제 인생 최고의 5월인 것 같아요”
최고의 일주일을 보내고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홍영현(25, 두산 베어스)이 한 대답이다. 육성선수였다가 정식선수로 전환된 뒤 지난 10일 1군에 등록된 그는 14일 고척 넥센전에서 1이닝 1탈삼진 2볼넷 무실점으로 데뷔전을 장식했고, 19일 잠실 KIA전에서는 2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타자들을 막아내며 데뷔 첫 승을 거뒀다. 그의 말대로 생애 최고의 5월이다.
최근 부각된 사실이지만, 그는 2008년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 멤버다. 당시 동료 중 두산에서 같이 뛰는 선수만 해도 5명(성영훈, 허준혁, 허경민, 정수빈, 박건우)이나 된다. 배명고-동국대 출신으로 이들 중 유일하게 대졸인 그는 중간에 휴학까지 해 동기들보다 프로 입문이 5년이나 늦었다. 퓨처스리그에서 2년간 담금질을 거치고 3년차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1군 콜업 소식을 듣고 집에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며 동기들이 프로에서 펄펄 나는 동안 청소년대표팀 부모 모임에서 부모님이 당당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는 이야기까지 첫 인터뷰에서 숨기지 않고 꺼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앞으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 마음속에 숨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첫 경기에 비해 그리 떨리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5월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미래의 계획까지 바꿔놓았다. 홍영현은 첫 승을 거둔 뒤 “사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군대를 가려고 했는데, 1군에 올라오면서 좀 더 하고 가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상무나 경찰청을 갈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것 같다. 올해는 계속 1군에 붙어 있는 것이 목표고, 내가 없더라도 팀이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우승을 보면서 나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두산은 19일 경기를 통해 처음 계획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더스틴 니퍼트가 예정대로 등판했다면 홍영현의 역투는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기치 않은 일로 에이스 니퍼트의 선발 등판이 미뤄졌고, 이는 두산표 화수분의 신상품인 홍영현을 탄생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니퍼트의 크고 작은 부상은 언제나 두산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끝에는 항상 새로운 투수 발굴이라는 달콤한 결과가 있었다. 유희관은 니퍼트의 공백을 통해 선발투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고, 좌완 스페셜리스트 이상의 평가를 받지 못했던 허준혁도 커리어를 바꿀 기회를 니퍼트 공백기에 얻었다.
2013년 5월 4일 등 근육 담 증세로 니퍼트는 선발 등판이 힘든 상태가 됐다. 이때 김진욱 전 감독이 대체 선발로 내보낸 선수가 바로 유희관이다. 자신의 1군 첫 선발 등판 경기였던 잠실 LG전에서 5⅔이닝 5피안타 1탈삼진 2볼넷 무실점한 그는 데뷔 첫 승에도 성공했다. 이후 10승으로 시즌을 마친 그는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베어스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한 토종 좌완투수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지난해 어깨 충돌 증후군으로 2개월간 자리를 비웠을 때는 허준혁이 등장했다. 롯데에 입단해 SK를 거치며 두산에 와서도 2014년까지는 좌완 스페셜리스트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엔 퓨처스리그에서 선발 수업을 받고 니퍼트가 빠진 동안 올라와 돌풍을 일으켰고, 16경기에서 63이닝을 소화하며 3승 2패,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했다. 지금도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발 자원이다.
홍영현이 유희관, 허준혁과 다른 부분을 찾자면 우완이라는 점 외에도 불펜 요원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자신의 장점을 설명해달라는 부탁에 “과감한 승부를 한다”고 말한 그는 “아마추어 때는 선발만 했지만 프로에 와서는 불펜에서만 던졌다. 지금은 전력투구로 1이닝을 막는 것도 좋은 것 같다”며 불펜투수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뜻하지 않은 악재가 선발투수 두 명을 만들어줬고, 이번엔 불펜까지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두산 담당기자 nick@osen.co.kr
[사진] 두산 베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