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불혹(不惑)’ 넘어선 이승엽, 이호준, 이병규…그 빛과 그림자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6.06.03 10: 09

6월 2일 마산구장에서 열렸던 1, 2위 팀인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전 8회. NC 이호준이 두산 핵심 불펜 정재훈을 상대로 3-3 동점 적시타를 쳐냈다. NC는 이호준의 일타를 발판 삼아 기어코 역전승을 일궈냈다.
이호준은 이승엽(삼성 라이온즈)과 같은 1976년생, ‘불혹(不惑)’에 접어들었다. 이미 코치를 하고도 남을 나이인데도 여전히 팀 타선을 지탱해주는 한 축으로 그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이승엽이야 일러 무엇 하리오.
이승엽이나 이호준처럼 마흔을 넘겨서도 빛의 존재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수들이 있는가하면, LG 트윈스의 이병규(42)나 두산의 홍성흔(39)처럼 ‘장강의 뒷 물결’에 떠밀려 어느덧 은퇴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그림자 같은 선수들도 있다.

올해 KBO 리그에는 마흔 언저리의 선수들이 즐비하다. 가장 연장자인 이병규와 최영필(42. KIA 타이거즈 투수)을 비롯해 한화 이글스의 주전 포수 조인성(41), 이승엽, 이호준, 박정진(한화 투수), 권용관(한화 내야수. 이상 40) 외에도 마흔 줄을 눈앞에 둔 홍성흔과 송신영(39. 한화 투수), 정대현(38. 롯데 자이언츠 투수), 김병현(37. KIA 투수) 등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이승엽이나 이호준은 팀의 주전선수로 지위가 흔들림이 없지만 대개는 ‘세대교체’의 대세에 밀려 설 자리를 찾지 못해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존재감을 상실한 선수들이 많다.
나이 마흔을 넘어서도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것은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공자님 말씀을 빌리자면, ‘불혹’ 의 나이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좀체 흔들림이 없고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판단이 명쾌하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흔들림이 없지, 세상살이가 어디 그런가. 그런데도, 제 힘을 잃지 않고 프로야구판에 ‘살아남은’ 선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 ‘불혹’은 다르게 말하자면, 원숙한 경지와 통하는 말이다. 단순한 선수연명이 아닌, 의미 있는 연장선상에 서 있는 선수들과는 달리 2군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선수들에게 내일은 없다.
돌이켜보자면, 한국 프로야구 첫 해인 1982년 백인천은 마흔의 나이에 MBC 청룡 감독 겸 선수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유일무이한 4할 대 타율( .412)을 기록했다. 물론 백인천 감독의 경우는 아주 특이한 사례이긴 하다.
1980년대에 최고 반열에 올랐던 선수들 가운데 1958년생인 최동원(작고. 전 롯데 자이언츠. 1983~1990년)은 32살에 은퇴했고, 같은 나이의 김시진(전 삼성 라이온즈. 1983~1992년)도 34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역시 동년배인 이만수(전 삼성. 1982~1996년)가 비교적 선수생활을 오래 한 축에 속해 38살까지 현장에서 뛰었다.
마운드의 전설 선동렬(전 해태. 1985~1995년, 주니치 드래곤즈 1996~1999년)은 충분히 뛸 수 있는 여력이 있었지만 36살에 접었다. ‘바람의 아들’로 칭송을 받았던 이종범이 41살까지(해태, KIA 1993~2011년. 주니치 1998~2001년) 견뎌냈던 것이 장수 선수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승엽이 없는 삼성은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이승엽은 올 시즌 50게임에 나가 9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타율도 3할 대( .302)다. 무엇보다 이승엽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역시 홈런이다. 6월 1일 시즌 9호 홈런으로 일본(159개)과 KBO 리그(425개)에서 날렸던 개인통산 홈런이 584개. 600홈런 고지가 저만치 보인다.
현역 가운데 이승엽에 이어 개인통산 홈런 2위(316개. 역대 5위)인 이호준은 45게임에 출장, 타율 3할1푼3리, 7홈런, 35타점을 기록 중이다.
이승엽, 이호준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선수들이 이병규(등번호 9번)와 홍성흔이다. LG와 두산의 간판타자였던 둘은 이젠 2군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3, 4년 뒤를 내다본 양상문 감독의 신진 육성 지도방침에 따라 이병규는 2군에서 조절하며 1군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1군에 선다고 해도 대타요원으로 기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게 객관적인 판단인 듯하다. 9월 엔트리 확대 때라면 모를까 이병규가 당장 1군 무대에 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럴지라도 이병규는 2군에서 두 경기에 한 경기 꼴로 출장해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타격 2위(타율 4할5푼, 3홈런, 21타점)에 올라 있다.
홍성흔 역시 이병규와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병규가 올 시즌 1군 무대에 단 한 경기도 서지 못한 반면 홍성흔은 그나마 9경기에 나가기는 했으나 뚜렷한 활약상은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워낙 두산의 내, 외야진이 탄탄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홍성흔은 퓨처스리그에서 16게임에 나가 타율 3할6푼2리, 7타점을 기록했다.
1군 무대에서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노장투수들 가운데 최영필은 취약한 KIA 불펜에서 그야말로 노익장을 발휘, 18게임에 등판해 18⅔이닝을 던져 2패 2세이브 2홀드를 기록했다. 한화에서 불펜요원으로 온갖 궂은 등판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박정진도 28게임에서 26이닝을 소화, 2승 2패 2홀드를 기록했으나 날이 갈수록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그래도 이들은 나은 편이다.
메이저리그르 경험했던 KIA의 김병현(37)은 그 존재가 가뭇하다. 현재 KIA 재활군에서 훈련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는 있지만 예전 구위를 되찾지 못해 올 시즌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신세다.
‘모든 사라진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정희 시인)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사라져야하는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홍윤표 OSEN 선임기자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