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힘을 잃더니 결국 5할이 무너졌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5할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까지는 없지만 투수 운영에서 뭔가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소 잃은 외양간은 텅 비어 있었다.
SK는 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6-7로 졌다. 주중 한화와의 원정 3연전에서 1승2패로 열세 3연전을 기록한 SK는 두산과의 주말 3연전 첫 두 경기에서도 패하며 일찌감치 열세 3연전을 확정지었다. 개막 극초반 이후로는 계속 지켜왔던 5할 승률은 이날 부로 무너졌다.
최근 극심한 빈타에 시달리고 있는 타선이 제 몫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역시 선발 크리스 세든의 부진이 컸다. SK는 1회 올 시즌 처음으로 1번 타순에 배치된 헥터 고메즈의 솔로홈런으로 최근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세든이 3회까지만 7실점하며 경기 흐름을 완전히 내줬다.

최근 흔들리는 양상이 뚜렷한 세든은 2회 5실점을 하며 고전했다. 선두 박건우에게 불운의 우익수 앞 2루타를 맞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어 폭투로 무사 3루에 몰렸고, 에반스의 우익수 오른쪽 2루타 때 1점을 동점을 내줬다. 이어 허경민의 타석 때는 1루수 실책이 나왔는데 이도 잘 맞은 타구로 기록만 실책이었다.
이후 세든은 두산 타선의 집중타를 이겨내지 못하고 2회에만 5실점했다. 기본적으로 세든의 구위가 좋지 못했을 뿐 더러 투수와 포수 사이의 배터리 호흡도 흔들렸다. 하지만 SK 벤치의 움직임은 특별하지 않았다. 몸을 푸는 선수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세든으로 밀고 가겠다는 뜻이 읽혔다.
사실 선발투수를 2회에 교체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 2회까지 4점을 뒤지고 있었으니, 일단 좀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일리는 있었다. 세든이 위기를 넘긴 뒤 안정을 찾고 적어도 4~5회까지는 끌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더 흔들리면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 했는데 SK는 그렇지 못했다. 흔들리는 세든을 그냥 밀어붙인 SK는 3회에도 실점하며 경기 흐름이 일찌감치 넘어갔다.
세든은 1사 후 허경민에게 볼넷을 내줬다. 빠른 공이 예리하지도 않았고, 변화구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SK는 올 시즌 엔트리에 투수 13명을 불변으로 유지하고 있는 리그 유일의 팀이다. 이번 주에는 선발 투수들이 5~6이닝을 꾸준히 소화했고 추격조의 체력 소모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일단 한 템포를 끊어가는 교체를 검토해 볼 만했다. 하지만 SK는 세든을 고집했고 이는 추가 2실점으로 돌아왔다.
세든은 좌타자 정수빈에게 좌전안타를 맞았다. 주자가 다시 득점권에 나갔다. 여기서도 SK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진 2사 1,3루에서는 우타자인 김재호가 나섰음에도 역시 움직임은 없었다. 결국 우전 적시타를 맞았다. 결국 세든은 오재원의 타석 때 연이어 폭투를 줘 또 실점했다. 오재원이 좌타자니 여기까지만 막아달라는 뜻이었지만 이미 세든은 자기 구위를 잃은 상태였다. 심리적으로도 흔들리고 있었다.
SK는 3회가 끝난 뒤에야 김주한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김주한은 퓨처스리그에서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아 1군 수업을 받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 나서기도 했고 추격조 임무를 하기 위해 2이닝 이상을 던지기도 했다. 충분히 2~3이닝을 던질 수 있는 투수다. 좌완으로는 필승조 신재웅을 아끼더라도 이정담이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김주한이나 이정담이 당시 나섰다고 해도 두산 타선의 방망이를 저지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한 차례 투수 교체로 흐름을 끊어가는 게 때로는 상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때도 있다. 일단 5회까지 총력을 다해 막아보고 안 되면 슬기롭게 후퇴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SK는 이도 저도 못했다. 투수는 투수대로 쓰고, 경기는 붙잡아보지도 못했다.
투수 엔트리에 13명을 투자하는 SK이기에 투수로 승부를 걸 여력은 타 팀에 비해 더 컸다. 그러나 SK는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최근 빈타를 이어가고 있는 타선, 상대 선발이 비교적 안정적인 마이클 보우덴임을 고려하면 6점을 커 보였다. 뒤늦게 추격한 타선의 추격점을 고려해도 2~3회 투수 운영은 뼈아팠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