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2014년 첫 14경기를 치렀을 당시 9승5패를 기록했다. 2015년 첫 14경기도 9승5패였다. 공교롭게도, 올해 첫 14경기도 9승5패였다.
시즌 극초반은 비교적 잘 나갔음을 알 수 있는 통계다. 지난해는 5월까지의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SK는 5월 말까지 25승23패1무를 기록했다. 올해 5월까지의 성적은 25승24패다. 엇비슷하다. 그러나 그 이후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SK는 지난해 6월 내내 힘겨운 5할 고지전을 벌이다 여름부터 쭉 미끄러졌다. 올해도 불안불안하더니 6월 들어 성적이 처진다. 이번 주 5경기에서 단 1승을 건졌고 4일 잠실 두산전 패배로 기어이 5할 승률이 붕괴됐다.
물론 SK의 올 시즌 전력은 당장 한국시리즈 우승을 논할 만큼 강하지 않다. 지난해보다 전력이 더 약해졌다는 평가가 객관적이다. 지금까지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것은, 이 치열한 혼전에서 ‘잘 버텼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해와 올해의 내리막이 거의 흡사하다는 데 있다. 적어도 지난해의 전철을 되풀이하지는 않아야 하는데 올해도 똑같은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 이쯤이면 단순한 ‘전력 문제’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무책임하다.

흡사하다. 초반에는 힘이 있는 투수진이 잘 버텼다. 타선이 답답한 양상을 이어가지만, 그래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선수 덕에 버틸 수 있었다(2015년 이재원, 2016년 정의윤). 하지만 6월 들어 서서히 접전에 지친 투수들의 힘이 떨어지고, 부상자가 나오며, 또 4·5월 내내 너무 많이 힘을 쓴 그 타선의 핵심 선수가 처지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내려간다. 지난해 문서를 그대로 복사해서 이름만 바꿔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위기를 풀어나가는 방법론은 지난해와 그렇게 달라진 점은 없다. 여전히 ‘부상 전력’이 있는 투수들을 ‘여름’을 위해 아끼며, 부진한 주축 선수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과시한다. 엔트리 변동은 최소화한다. 이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난해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5할도 안 되는 승률로 간신히 5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올해도 처방전의 틀이 바뀌지 않은 야수 쪽은 표류 중이다. 주축 야수들은 거의 대부분이 타격 부진에서 헤매고 있다.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학습효과가 없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오답노트를 분주히 살피며 다른 방법을 들고 나오길 기대했지만 아직은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만들어놨는지도 의문이다. 현장만 그럴까. 팀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시즌 초반 성적에 착시된 프런트 역시 오답노트가 없다. 지난해는 3위 이내, 올해는 5위라는 기대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투수들은 아끼는 것은 좋지만, 성적에 쫓기면 결국 나중에 과부하가 걸리더라’, ‘지난해 부진했던 선수들이 2군행 이후 나름대로 반등에 성공하더라’, ‘베테랑들의 팀 장악력도 필요하지만 부진에는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더라’, ‘투수뿐만 아니라 야수들도 체력 관리가 필요하더라’, ‘때로는 과감한 27인 엔트리 활용도 필요하더라’ 등이 오답노트에 쓰여 있을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선제적 대응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사정은 올해가 더 좋지 않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전까지는 전력이 좋았다. 정의윤의 트레이드라는 기가 막힌 한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지 않다. 베테랑들은 한 살씩을 더 먹었고, 지금까지 최상의 시나리오가 상당 부분 맞물려 돌아간 마운드는 불안요소가 더 커질 것이다. 트레이드는 성사될지도, 그렇다면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위권 싸움은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치열할 수도 있다. 도처에 악재다.
지금처럼 지난해와 같은 흐름대로 간다면, SK를 기다리고 있는 시나리오는 힘겨워하는 마운드와 여전히 심한 엇박자에 시달리는 타선의 ‘추락 콜라보레이션’이다. 또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적에 대한 압박이 현장과 선수들을 강하게 옥죌 것이며 구단과 여론은 뭔가의 희생양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면 갈수록 참신한 시도를 하기는 어려워진다. 시즌 막판에는 실체조차 불분명해진 ‘가을 DNA’ 타령에 팀의 운명을 맡기게 될 것이다.
예언이 아니다. 초기 진화에 실패한 SK가 지난해 여름 이후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올해도 이런 패턴을 되풀이할지, 아니면 실패 속에서 찾은 묘책을 적절하게 써먹으며 버틸 수 있을지가 팀의 시즌 농사를 좌우할 것이다. SK로서는 다행히, 최근 불펜 운영이나 타순 변화 등에서는 위기감 속에서 꿈틀대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시즌을 열 당시의 초심을 되새기며 승부를 걸어야 할 첫 시점이 왔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