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내셔널리그 타격왕을 수상한 디 고든(28·마이애미)은 최근 경기력 향상 약물(PED) 복용이 적발돼 80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1년에 몇 명씩 적발되기는 하지만 지난해 리그 정상급 활약을 보여줬던 선수라 메이저리그(MLB)의 충격은 더 컸다.
그저 발이 빠른 유망주로 사라지는 듯 했던 고든은 2014년 148경기에서 타율 2할8푼9리, 176안타, 64도루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된 직후 시즌인 지난해에는 145경기에서 타율 3할3푼3리, 205안타, 58도루로 자신의 성적을 더 끌어올리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올스타·실버슬러거·골드글러브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이 모두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었다.
고든이 언제부터 PED에 손을 댔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선수는 “실수였다. 절대 고의가 아니었다”라고 항변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미 언론들은 고든은 2014년을 전후로 약물의 유혹에 빠졌다고 보고 있다. 기량 향상이 약물의 힘을 빌렸을 것이라는 당연한 추론이다. 어쨌든 고든은 최고 시즌을 기록한 뒤 마이애미와 6년 최대 64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으며 돈방석 위에 앉았다.

당시 ESPN과의 인터뷰에 임한 한 단장은 “고든은 약물로 원하는 것을 이뤘다”라고 꼬집었다. 80경기 징계를 받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약물을 하지 않고 돌아와 연간 1000만 달러 이상을 받으며 뛰면 그만이다. 이 단장은 “이래서 선수들이 약물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라고 혀를 찼다. 고든의 사례로 MLB에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그렇다면 KBO 리그는 어떨까. KBO 리그도 약물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몇몇 적발 사례가 있어 팬들을 충격에 몰아넣었고, 이에 리그도 징계 규정을 강화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KBO 리그에서도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도핑 검사가 의무화됐다. 좀 더 체계적인 도핑테스트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아직은 인력 및 비용 부족으로 일각을 훑는 데 그치고 있다.
복수의 구단 트레이너들은 “다른 팀은 모르겠지만 올 시즌 두 차례의 도핑 테스트에서 모두 소변검사만 했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구단 트레이너는 “요즘 약물들은 금방 체내에서 빠져 나온다. 소변 검사로 잡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결국 전수조사와 혈액검사가 답이지만, 비용과 시간 소모가 만만치 않다. 당장 시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라고 아쉬워했다.
약물은 선수와 구단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킨다. 평생 꼬리표가 남는다. 여기에 다른 선수들이 흘린 땀의 가치까지 훼손시킨다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이에 각 구단들에서도 약물은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됐다. 철저히 교육을 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그냥 단백질 보충제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구단 트레이너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먹도록 한다. 무슨 성분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라면서 “이제 실수로 먹었다는 해명조차 프로답지 못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수들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 환경이 그렇다. 한국에서도 PED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됐다. 먹는 약물이든, 주사로 투입하는 약물이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수배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지금으로서는 ‘선수 스스로가 약물을 멀리하길’ 바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한 관계자는 “널리 알려진 스테로이드 성분은 조금의 경로만 거치면 인터넷에서도 구할 수 있다. 주로 보디빌더들이 많이 이용한다”라면서 “야구 선수들도 비시즌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을 할 때 보디빌더들과의 접촉이 잦다.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모든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이 노하우에는 당연히 ‘약물을 최대한 빨리 배출시켜 도핑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포함된다.
모든 선수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때문에 좀 더 철저히 교육하고 감시하며, 적발된 선수는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선수들 사이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여론과 구단도 해당 선수에게 온정적이어서는 안 되고, 사각지대에 있는 2군 선수들에 대한 감시도 철저해야 한다는 다양한 아이디어 또한 존재한다. 다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에는 너무 큰 리그 명예가 달려 있는 문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