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이대호(34·시애틀)의 앞날은 불투명했다. 메이저리그(MLB) 보장 계약이 아닌,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보장된 연봉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분 자체가 보장된 게 없었다.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꿈을 향한 이대호의 의지는 단호했다. “자신이 있다”라는 말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 이대호는 하나씩 단계를 밟아 나가며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쉽지 않았던 25인 로스터 경쟁에서 승리했고, 플래툰 보직에서의 성공은 이미 확인했다. 이제 팀의 주전 선수로 도약하는 과정에 있다.
스플릿 계약을 맺은 선수가 MLB 25인 로스터에서 자리를 잡고 맹활약을 펼칠 확률은 사실 극히 낮다. 매년 수많은 선수들이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을 맺지만 이 중 스프링캠프에서 살아남아 25인 로스터에 드는 선수도 극소수다. 주전 도약 사례는 거의 없다. 저스틴 터너(LA 다저스) 외에는 최근 기억에 남는 사례도 마땅치 않다. 터너와 달리, 이대호는 MLB 경력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대호는 정교함과 장타력을 모두 갖춘 선수라는 점에서 타격에서는 확실한 영역이 있는 선수다. 이런 추세라면 신인왕 레이스에 가세하는 것도 결코 헛된 망상은 아니다. 물론 아직 소화 타석이 적어 신인왕 후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늘어나고 있는 기회를 고려하면 남은 시즌이 흥미로워졌다.
이대호는 4일(이하 한국시간)까지 87타석을 소화한 가운데 타율 3할1푼, 출루율 3할4푼8리, 장타율 0.586, 8홈런, 20타점을 기록 중이다. OPS(출루율+장타율)는 0.934다. 올해 신인 자격을 갖췄고 75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를 기준으로 할 때 OPS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는 트레이스 톰슨(LA 다저스)으로 0.917, 3위는 알레디미스 디아즈(세인트루이스)로 0.881, 4위는 트레버 스토리(콜로라도)로 0.879다. 코리 시거(LA 다저스·0.849), 노마 마자라(텍사스·0.836) 등 MLB를 대표하는 특급 신인들과의 차이는 꽤 난다. 특히 두 달 연속 아메리칸리그 이달의 신인상을 수상한 마자라와의 경쟁이 흥미롭다.
마자라는 타석이 이대호의 2배 정도(177타석)다. 단순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OPS는 0.836으로 이대호보다 처진다. 많은 출장 기회를 얻었지만 9홈런·25타점의 성적은 이대호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메리칸리그 투수 쪽에서 아주 눈에 띄는 선수가 있는 것은 아니라 이대호가 규정타석에 근접한 타석만 기록할 경우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