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26·NC)은 SK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투수 중 하나다. 원래 좋은 투수이기는 하지만 유독 SK만 만나면 극강의 모습을 과시했다. 이른바 투수와 타자 사이에 ‘상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SK는 이재학을 극도로 까다로워한다. “공이 오다 사라진다”라고 하소연하는 선수들도 몇몇 있다.
이는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재학은 통산 SK전에 16경기(선발 13경기)에 나가 7승2패 평균자책점 2.21이라는 환상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 이는 10경기 이상 선발로 던진 투수 중 리그 최고 기록이다. 상대팀별로 봤을 때 가장 강했다. 3~4경기 성적도 아니고, 16경기 성적이면 확실한 표본이라고 봐야 한다. 올 시즌도 지난 5월 25일 마산 경기에서 6회까지 노히터 행진을 벌이는 등 8⅓이닝 1피안타 12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를 챙겼다.
그런 이재학의 SK전 강세는 ‘인천’과 만나면 더 강해진다. 이재학은 11일 인천 SK전 이전까지 통산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총 9경기에 나가 5승1패 평균자책점 ‘1.23’(58⅔이닝 8자책점, 1피홈런)을 기록 중이었다. 자신의 통산 평균자책점(3.81)과 비교해보면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2012년 이후 인천에서 4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선수 중 이재학에 이은 2위는 더스틴 니퍼트(두산)로 2.60인데 이재학의 두 배 이상이다. 인천에서는 세계 최고의 투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2013년 7월 31일에는 인천에서 자신의 데뷔 첫 완봉승을 거뒀다. 패전은 딱 한 번 있었는데 이도 못 던진 것이 아니었다. 2014년 10월 7일 경기에서 8⅔이닝 2실점 완투패였다. 당시 김경문 NC 감독은 불펜 투수를 투입하기보다는 워낙 잘 던진 이재학을 밀어붙였는데 9회 2사 1,2루에서 박정권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다. 기록 상으로는 패전이지만 SK가 간신히 이겼던 경기였다.
그런 이재학은 11일 인천 SK전에 팀의 9연승 중책과 함께 마운드에 올랐다. 사실 이날 경기력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간 SK전에서 4실점이 가장 많은 실점이었는데 이날 6이닝 동안 6피안타(1피홈런) 2볼넷 4실점했다. 전 경기에서 SK를 상대로 12개의 소나기 삼진을 기록했던 이재학임을 고려하면 이날 투구 내용은 다소 부진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간 SK전에서 이재학에 빚을 졌던 동료들이 든든하게 버텼다. SK 에이스 김광현을 상대로 대포를 뿜어내며 넉넉한 득점 지원을 했다. 이재학이 2회 2실점하자 3회 곧바로 테임즈의 3점 홈런과 이호준의 솔로홈런으로 역전을 만들었다. 4회 1실점 뒤에는 5회 이호준의 2점 홈런과 연속 3안타로 3점을 더 보태며 5회까지 7-4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수비 지원도 빼어났다. 2회 무사 만루에서 최정민의 타구는 테임즈가 직접 잡았고 이에 끊김없는 연속 동작으로 몸을 날려 1루 베이스를 찍었다. 자칫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기를 한 템포 막아낸 셈이 됐다. 김강민에게 홈런을 허용한 직후인 5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는 김성현의 홈런성 타구를 좌익수 김성현이 뛰어 올라 담장을 맞히기 전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이며 사실상 1점을 건져냈다.
불펜도 남은 4이닝 동안 SK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재학의 승리를 지켰다. 그렇게 이재학은 동료들의 지원 속에 시즌 7승, 그리고 NC의 창단 이후 최다 연승인 9연승 기록의 승리투수로 이름을 남겼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