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워야지”
김경문 NC 감독은 1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를 앞두고 연승에 대한 질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NC는 11일 인천SK전에서 짜릿한 1점차 승리를 거두며 창단 후 최다 연승인 9연승을 내달렸다. 12일에도 승리할 경우 첫 10연승이라는 또 하나의 상징적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다. 사령탑이라면 모두가 욕심을 낼 법한 경기였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이날 과감한 선택을 했다. 주축 불펜 투수들을 모두 대기 명단에서 지워버렸다. 경기 준비도 하지 않고 무조건 휴식이라는 의미였다. 이들은 최근 잦은 등판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10연승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이 선수들의 관리에 먼저 초점을 맞춘 것이다. 다음 날이 휴식일임을 고려하면 무조건 이틀은 쉬는 프로그램이었다.

실제 ‘연승 후유증’은 상당히 무섭다. 연승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주축 투수·야수들을 모두 최대한적으로 짜내게 되어 있다. 승리를 할 때는 피로도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 연승이 끊길 때 피로도는 한꺼번에 찾아온다. “연승을 이어가야 한다”라는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감도 무시할 수 없다. 집중의 시간이 끝난 뒤 한꺼번에 피로감이 찾아오는 것은 일상생활이나 야구나 매한가지다. 긴 연승 이후 고전하는 경우도 그래서 생긴다.
실제 NC는 6월을 문을 열며 전승을 거두고 있었다. 그 과정에 불펜 투수들의 피로도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9연승 기간 동안 김진성(6경기 7이닝)과 마무리 임창민(6경기 6이닝), 핵심 불펜 최금강(5경기 9⅓이닝)이 자주 경기에 나섰다. 갈수록 구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성적은 물론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부분이었다. 김 감독은 10연승보다는 이 선수들에 대한 관리를 선택했다. 설사 한 경기를 주더라도 장기적으로 생각하겠다는 의지였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NC는 이날 선발 정수민에 이어 장현식 김선규 민성기 원종현이 이어 던졌다. SK에 8점을 내주며 다소 고전하기는 했지만 타선이 이를 만회했다. 1-7로 뒤지던 7회와 8회 상대 불펜을 두들기며 10점을 뽑아내며 마운드의 흠을 완벽하게 메워내며 10연승에 도달했다. 타자들이 맞지 않을 때는 투수들이 힘을 내고, 투수들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자 타자들이 일어섰다. 완벽한 투·타 밸런스였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오늘 같은 경기는 감독이 선수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경기”라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멀리 보는 김경문 감독의 선수단 운영이 이런 토대를 만들고 있다”라고 입을 모은다. 시즌 초반 순위 싸움에서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엔트리 전원을 폭넓게 활용하는 야구로 중반 이후를 도모했다. 10연승도 이렇게 다져 놓은 기초 체력이 만든 성과라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몇몇 특정 불펜 선수들의 혹사 논란이 어쩔 수 없었던 NC였다. 김경문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시범경기 당시 “적절한 관리도 필요하고, 새 얼굴의 발굴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12일처럼 필승조 선수들을 관리해주는 경기가 늘어났고, 적절한 1·2군 이동을 통해 체력을 비축함과 동시에 향후 레이스의 포석까지 던져놓고 있다. 설사 다소 경력이 떨어지는 선수라도 상황에 따라 과감히 기용한다.
야수들도 체력 안배가 무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내야에서는 지석훈, 외야에서는 김성욱이 감초 임무를 잘하고 있다. 또한 몸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선수들은 경기에서 제외하거나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해 회복의 시간을 배려한다.
그러면서도 김 감독은 더 안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이다. 어차피 시즌은 길고, 연승의 기쁨은 잠시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베테랑이다. 결국 김 감독이나 팀이 꿈꾸는 것은 당장의 연승보다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권이다. 한 관계자는 “성적이 어느 정도 제 궤도에 올라왔으니 김 감독이 시즌 운영을 계산하기는 더 편해질 것이다”라고 점쳤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유 속에 NC의 꿈도 커지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