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의 이글아이] 한화 대반격에는 김성근의 변화가 있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6.06.14 05: 51

"난 만세만 하고 있으면 돼". 
한화 김성근 감독은 지난 10일 대전 LG전에서 연장 10회 정근우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한국시리즈 우승할 때도 부르지 않았던 만세를 부른 것이다. 옆에 있던 김광수 수석코치와는 양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했다. 이틀 뒤에는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친 양성우를 향해 두 팔을 벌려 품에 안겼다. 따뜻한 포옹으로 기쁨을 함께했다. 
김 감독에게 만세와 포옹이라니. 김 감독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도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다. 경기가 워낙 치열하게 치러지다 보니 순간적으로 기쁨을 자주 표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SK에서부터 7시즌째 김 감독과 함께하고 있는 정근우 역시 "만세를 부르시는 건 보지 못했다. 포옹은 몇 번 한 것 같은데 이 정도로 기뻐하신 적은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매번 가슴 졸이게 하는 한화의 경기 자체가 엄격하고 진지하며 근엄한 김 감독마저 들썩이게 하는 것이다. 

김 감독은 절대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선수들이 눈도 쉽게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권력자의 면모를 풍긴다. 김 감독이 있을 때와 없을 때 훈련의 긴장감도 다르다. 야구 스타일 또한 그렇다. 선발투수는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일찍 내렸고, 야수들에겐 강공보다 보내기 번트나 작전을 자주 썼다. 선수 개인기록보다 철저하게 팀 승리에 초점을 맞춰 움직인다. 지금도 이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다. 
하지만 최근 김 감독이 진짜 달라진 건 따로 있다. 표현의 방법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연승 기간의 김 감독은 선수나 코치 칭찬을 자주 했다. 지난 10일 LG전 연장 10회 차일목과 조인성이 2연속 페이크 번트 슬래시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벤치에서 나온 사인이었지만 김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한 것이다. 내가 사인을 낸 것이 아니다"며 "요즘은 내가 별로 할 일이 없다. 만세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농담을 던지면서 웃었다. 자신의 작전보다는 선수들의 능력을 칭찬하고 추켜세웠다. 
선발을 조금 더 끌고 가려하고, 번트를 조금이나마 줄였지만 야구 스타일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선수들에게 믿음을 전하는 코멘트나 적극적인 스킨십이 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있다. 허리 수술 이후 덕아웃에 서서 경기를 지휘하며 함께 박수도 치고 환호도 한다. 아쉬운 플레이가 나오면 같이 탄식하며 안타까워한다. 하나의 팀으로 일체감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김 감독이 경기 전 덕아웃에 앉아 훈련을 지켜보는데 김 감독이 있든 없든 선수들은 눈치를 보지 않고 웃으며 훈련한다.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요즘 코치들에게 많이 맡긴다. (11일 LG전에는) 정민태 투수코치가 송신영을 대체 선발로 쓰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정민태 코치가 좋다고 하니 믿어 봐야지"라고 말했다. 이날 송신영은 4⅓이닝 1실점 기대이상 호투를 펼쳤다. 전체적인 훈련 스케줄과 방식도 김광수 수석코치에게 맡기며 한 발 물러서서 총체적인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시즌 초반 한화가 끝 모를 추락을 한 데에는 여러 악재가 있었지만 내부 신뢰의 문제도 있었다. 김 감독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지만 성적 부담으로 극심한 조급증에 시달렸다. 팀 분위기도 얼음장처럼 경직돼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결 여유를 찾았다. "위기에서도 '선수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이겨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김 감독의 말이다. 선수들도 "감독님이 요즘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지금 기세를 계속 이어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믿음의 고리가 단단해진 것이다. 
표정 변화 하나 없던 고독하고 냉철한 승부사에서 일희일비하는 인간적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았던 김 감독이었기에 그의 변화는 믿기지 않고 놀랍다. 야구가 자주 이기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법, 앞으로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지금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 냄새 나는 김 감독의 변화가 일시적이지 않고 계속 된다면 한화의 반격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한화 담당기자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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