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혼다 ‘올뉴 파일럿’, 혼자 탔지만 홀로 운전하지 않았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6.06.16 08: 12

얼마 전 혼다코리아 정우영 사장에게 물었다. "혼다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인기가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구성입니다. 그리고 항상성입니다."
'기술의 혼다'를 표어처럼 구사하는 혼다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고장 나지 않는 차'로 인식 돼 있다. 내구성은 그렇게 수긍이 간다.
그런데 '항상성'이란 무얼까? 정 사장은 “꾸준함입니다. 변덕스럽지 않게 묵묵히 갈 길을 갑니다. 디자인도 그렇습니다. 이전 모델을 타던 운전자가 새 모델을 보고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서서히, 조금씩 진화해 갑니다”고 했다.

작년 10월 혼다의 3세대 ‘파일럿’이 국내에 출시 됐다. 2009년 2세대 출범 이후 6년만에 개발 된 풀체인지 모델인 만큼 그 사이 달라진 트렌드가 디자인에 반영 됐다. 종전 모델이 박스형에 가까웠다면 3세대 모델은 유선형을 취했다. 강인함에서 매력을 찾던 대형 SUV의 트렌드가 그 사이 조화로움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올뉴 파일럿’을 다시 접하게 됐다. 달라진 디자인은 낯설지 않았다. 박스형에서 유선형이면 기조 자체가 바뀐 것인데도, 불쑥불쑥 이전 모델이 오버랩 됐다. 달라졌지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지배하고 있었다. 정우영 사장이 말한 ‘항상성’이 와 닿는다.
‘올뉴 파일럿’의 개발 콘셉트는 ‘유연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가족’이다. 유연함은 달라진 디자인에서, 부드러움은 넉넉한 힘을 내는 가솔린 엔진에서, 가족은 ‘운전하는 외로움’으로부터 탑승자를 지켜주는 안전장치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에어로 다이내믹을 말하다
듬직한 하체를 토대로 곡선과 직선이 조화를 이룬 디자인은 확실히 ‘대형 SUV’가 주는 위압감을 상쇄시켰다. 시각적으로 ‘엄청 큰’ 차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렇게 큰 차를 내가 과연 운전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은 잠시 잊게 한다. 실체도 그럴까?
‘올뉴 파일럿’은 여전히 ‘엄청 큰 차’였다. 이전 모델의 잔상은 이런 데서 온 듯하다. 전면부는 여전히 강인하고 개성 넘쳤다. 각진 모습을 깎고, 전고를 낮춰 작아 보이게 했을 뿐, 실체는 결코 작지 않았다. 오히려 전장은 80mm가 길어져 4,955mm에 달한다.
측면에서 보는 실루엣은 제법 파동이 일렁이고 있다. 벨트라인은 뒤로 갈수록 끝이 살짝 올라가 역동성을 살렸고 지붕 위의 루프레일도 옆 라인을 구성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도심에서 달려도 어색하지 않게 됐다. 간간이 아랫단을 내려다 보자. 타협하지 않는 고집이 완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자갈길을 내달려도 꿈쩍 않을 태세다. 
혼다측에서는 에어로 다이내믹을 실현한 덕분에 경쟁 모델 대비 20% 정도 개선 된 주행 저항을 실현했다고 말한다. 달라진 디자인은 경제성에도 도움을 주고 있었다.  
▲곰 같으려면 차라리 여우가?
사람은 가벼우면 못쓴다. 그런데 아둔하면 더 못쓴다. 차도 강직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면 좋다. 대형 SUV와 가솔린 엔진은 상충하는 두 가치를 조화시켜야 하는 명제에서 꽤 어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류세 정책이 ‘대형 SUV=디젤’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내며 이를 막아왔지만 말이다. 연비 문제는 기술 발달로 점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올뉴 파일럿’에는 V6 3.5L 직접분사식 i-VTEC 엔진이 장착 돼 있다. 284마력의 최대 출력은 넉넉하고 36.2kg.m의 최대 토크는 외유내강이다. 과격한 출발이 없어 부드럽고, 한번 움직이면 금방 힘이 붙는다. 6기통 실린더는 상황에 따라 기통수를 줄여서 작동하니 연료가 절감 된다. 8인승 가솔린 대형 SUV의 복합연비 8.9km/l(도심 7.8 km/l, 고속도로 10.7 km/l)는 이런 노력 끝에 나온다.
과격한 운전을 피하니 고속도로와 도심을 오가며 1,200km를 운행하고 트립상 연비 11.3 km/l를 찍었다. 비슷한 배기량의 가솔린 승용차 연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당장은 아니지만 만약을 대비할 필요는 있다. 프리미엄 대형 SUV의 필수요건인 사륜구동이 그런 류다. 그런데 잘 닦인 아스팔트만 달린다면 사륜구동은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네 바퀴를 제어하느라 굴림이 뻑뻑하게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상시 사륜구동에도 지능형을 쓴다.
올뉴 파일럿에도 지능형 AWD가 실렸다. 사실 일반도로를 달릴 때는 차가 사륜구동이라는 인식 조차 하기 어렵다. 파일럿에 장착 된 AWD를 혼다는 ‘i-VTM4’라고 불렀다. 풀이하면 ‘지능형 전자식 구동력 배분시스템’이다. 운전자가 정속 주행만 한다면 차는 전륜 2바퀴에만 구동력을 전달 한다. 토크 벡터링이 전후와 좌우, 4바퀴에 가해지는 토크를 상황에 맞게 배분하는데 정속 주행 중이라면 4바퀴 구동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다. ‘i-VTM4’는 급격한 코너링이나 노면이 미끄러운 환경을 만나면 바쁘게 최대 70%까지 후륜에 구동력을 배분한다.
운전자가 인위적으로 도로 상황에 대비하도록 차에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인텔리전트 트랙션 관리 시스템’으로 일반도로, 눈길, 진흙길, 모랫길의 4가지 지형을 선택해 파일럿의 ‘i-VTM4’로 하여금 미리 대비하게 할 수도 있다.
▲홀로 운전하지 않았네
모든 차는 운전자와 교감한다. 다만 형태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올뉴 파일럿’은 매우 적극적인 수다쟁이다. 수시로 운전자에게 신호를 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알아서 운전대를 툭툭 치기도 한다.
장거리 운전에서 운전자는 여러 상황을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외로움과의 싸움은 처절하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도 있고, 심할 때는 졸음이 몰려오기도 한다. 게다가 파일럿은 8인승 대형 SUV다. 성실한 조수가 필요하다. 
올뉴 파일럿에는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CMBS), 차선이탈 경감 시스템(RDM),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LKAS), 자동감응식 정속 주행장치(ACC)가 갖춰져 있다. 추돌 위험이 있으면 경고를 준 뒤 그래도 위험이 계속 되면 강제로 속도를 줄여주고, 차가 차선을 벗어나면 1차로 경고음을 내고 반응이 없으면 스륵스륵 핸들을 돌려준다. 설정된 속도로 정속주행을 하다가 앞선 차가 속도를 줄이면 알아서 브레이크를 잡아 준다.
올뉴 파일럿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을 귀신같이 포착해 귀찮을 정도로 알려준다. 스륵스륵 핸들링에 개입하는 그 느낌은 차에서 내린 한참 뒤에도 손끝 감각에 남아 있다. 수다쟁이 아내를 옆 좌석에 태우고 차를 몬 걸까?
▲카니발과 불과 16cm 차이
기아차 카니발의 전장이 5,115mm인데 파일럿은 이보다 불과 16cm 짧다. SUV이지만 미니밴에 버금가는 실내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3열 시트에도 성인 3명이 탈 수 있고, 이 시트를 접으면 광활한 적재 공간이 만들어 진다. 3열 시트를 눕히면 웬만한 자전거도 적재가 가능하고, 대형 유모차는 접지도 않고 실을 수 있다. 1열에서 2열, 2열에서 3열로 갈수록 시트는 조금씩 높아져 앞좌석에 앉은 사람의 뒤통수가 밉지 않다.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자동차 안전성 평가에서 전 부문 최고 안전 등급을 받아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 모델에 선정 된 ‘올뉴 파일럿’의 가격은 5,390만 원이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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