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윤희상인 자신의 라커가 있는 인천SK행복드림구장의 1루가 아닌, 3루와 더 친했다. 그는 재활을 하는 신세였다. 재활군 선수들은 당시 보통 3루측 실내 연습장에서 훈련을 했다. 원정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오면 방을 빼는 신세였다. 그리고 1군 경기가 시작될 무렵, 경기장을 떠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
의도하지 않은 하나의 타구로 모든 불행이 시작됐다. 2014년 5월 16일 대전 한화전이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윤희상은 1회 송광민의 투수 땅볼을 막다 오른 손가락을 다쳤다. 공을 다시 집어 들어 혼신의 힘을 다해 1루로 던져 이닝을 마무리하는 순간, 윤희상은 글러브를 집어 던졌다. 자신에게 다가올 난관을 직감한 듯 했다. 불행하게도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새끼손가락에 중수골이 부러졌다. 시즌 아웃이었다.
수술 뒤 한동안 공을 잡지도 못하며 뼈가 붙기만을 기다렸던 윤희상이 그나마 미소를 찾은 것은 2014년 시즌이 끝날 무렵이었다. 윤희상은 안부를 묻는 질문에 기자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는 힘이 들어간다”라는 메시지였다. 그렇게 윤희상은 2015년부터는 정상적인 시즌을 치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단어는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더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2015년 2월, 선의의 거짓말을 하다
윤희상은 2015년 SK의 전지훈련에 정상적으로 참가했다. 오키나와 연습경기에서는 실전에 나서기도 했다. 오키나와 연습경기 마지막 등판이었던 니혼햄전이 끝난 뒤, 윤희상은 “다시 이렇게 던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지금은 던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손가락 상태는 괜찮고, 전반적으로 몸 상태도 다 좋다”라고 웃었다. 하지만 이것이 100% 진실이 아님은 1년 뒤에야 알 수 있었다.
2012년 10승, 2013년 8승을 거두며 SK의 우완 에이스로 평가받았던 윤희상이었다. 2015년 선발 로테이션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 기복이 심했다. 21경기에서 5승9패 평균자책점 5.88에 머물렀다. 문제는 빠른 공 승부의 실패였다. 145㎞ 이상의 묵직한 공을 던지던 윤희상은 어느새 빠른 공 승부보다는 포크볼이나 변화구 위주로 돌아가는 승부를 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몸이었다. 다 회복된 것이 아니었다.
올스타 휴식기가 끝나고 여름이 찾아오자 통증이 심해졌다. 팔꿈치가 아팠다. 8월 15일 인천 두산전에서 윤희상은 130㎞ 초반대의 빠른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를 상대한 두산 선수들은 당시 “윤희상의 투구가 정상이 아니었다. 억지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SK 덕아웃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겨우 3이닝을 2실점으로 막은 뒤 강판됐다.
당연히 윤희상은 통증을 알리길 꺼려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불균형은 팔꿈치에 닿고 있었다. SK 코칭스태프는 팔꿈치에 올라온 통증이 어깨에 닿는 것을 가장 걱정했다. 김용희 감독은 휴식을 권했다. 당장의 팀 성적도 문제지만 선수 생명이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윤희상은 관리하며 던지겠다고 했다. 그 당시 윤희상은 “통증은 사실이지만, 코칭스태프에서 등판 간격 관리를 잘해주고 있어 괜찮다”라고 했다. 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윤희상은 그 뒤 두 번의 등판에서 무너지고 결국 시즌을 접었다. 8월 30일 수원 kt전에서는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4실점했다. 9월 17일 대구 삼성전이 마지막 기회였지만, 1⅓이닝 5실점하고 시즌을 접었다. 윤희상은 이제 수술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11월까지 재활을 해보고, 그 때도 통증이 있으면 수술을 하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2016년 6월, 부활을 노래하다
다행히 재활이 잘 됐다. “수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확신이 섰다. 코칭스태프나 SK 관계자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윤희상의 뜻을 존중했다. 몸이 안 돼 플로리다 1차 전지훈련에는 가지 못했다. 강화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2월 대만 퓨처스팀(2군)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공항에서 만난 윤희상은 같은 날 오키나와로 떠난 1군 선수단에 대해 이야기하자 “오히려 2군에서 천천히 몸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금은 여유가 생긴 모습이었다.
대만에서 만난 윤희상은 쾌조의 페이스였다. 몸이 아프지 않다고 했다. 딱 1년 전 들었던 이야기였다. “1년 전에도 그랬다”고 농담을 하자 윤희상은 “1년 전에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껄껄 웃었다. 감독 부임 첫 해, 윤희상도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욕심이 있었고, 조금의 통증은 참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은 진짜 괜찮느냐고. 윤희상은 “올해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힘줘 이야기했다.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여유가 있었다. 시즌 초반 2경기에서 부진해 다시 2군에 내려갔을 때도 윤희상의 표정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밝게 웃으며 2군 등판에 나섰다. 페이스는 여전히 좋았다. 대만에서부터 윤희상의 몸 상태에 “지금은 대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좋아졌다.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김상진 퓨처스팀 투수코치와 함께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대체 선발로 1군에 갔던 문승원의 힘이 떨어지자, 윤희상은 다시 1군에 올라갔다.
말을 걸기도 힘들 정도의 독기로 무장한 윤희상의 그 다음 스토리는 팬들도 잘 알고 있을 법하다. 4경기에서 호투했다. 6월 3일 잠실 두산전에서 5이닝 3실점, 10일 인천 NC전에서 6이닝 1실점, 16일 대구 삼성전에서 7이닝 2실점, 22일 인천 LG전에서 7이닝 2실점(비자책)했다. 6월 4경기 평균자책점은 2.16이고 최근 2연승이다. 팬들은 윤희상의 부활을 이제 서서히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난해에도 좋았던 시절은 있었지만 투구 내용은 부상 이후 지금이 가장 좋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에서 전성기에 근접해가고 있다. 22일 인천 LG전에서 윤희상은 최고 148㎞의 공을 던졌다. 5회 이후에도 꾸준히 145㎞가 나왔다. 지난해에는 잘 나와야 146㎞였고 대부분이 140㎞대 초·중반이었다. 구속이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윤희상의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치다.
물론 이런 좋은 결과가 계속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난관도 있을 것이고, 고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을 때의 몸 상태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부상 이후 770일 동안 윤희상이 했던 고민과 노력, 혹은 좌절의 경험이 모두 녹아있다. 그리고 SK는 770일 만에 팀의 우완 에이스를 되찾았다. 조금 많이 돌아왔지만 그래서 체감하는 반가움의 크기는 더 클지 모른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