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아시아 강호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기적적인 투혼으로 지킨 자존심이었다.
김남성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있었던 2016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3주차 경기에서 3연승으로 승점 7점을 챙겨 총 승점 9점이 됐다. 일본과 승점이 같았지만 3승 6패로 대회를 마친 한국은 일본(2승 7패)을 밀어내고 2그룹 잔류에 성공했다. 3주차 일정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승점 2점에 그쳐 사실상 강등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탈락 국가는 일본이 됐다.
말 그대로 자존심을 지킨 3연승이었다. 김 감독은 3일 네덜란드전까지 끝낸 뒤 “2그룹 12개 팀 중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건재하다. (3그룹에는) 대만이나 카자흐스탄 등 배구 수준이 한 단계 낮은 팀들이 있다. 아시아 배구는 여전히 한, 일, 중이라는 자존심이 있다”며 2그룹 잔류의 의미에 대해 역설했다. 이 말 뒤에 벌어진 경기들의 결과에 따라 한국은 아시아 강호라는 자존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실로 기적에 가까운 3연승이었다. 2그룹 최종순위 5위인 체코를 첫날 꺾었을 때만 하더라도 체코의 시차 적응 문제가 한국의 큰 승인 중 하나였다고 보는 시각이 컸다. 김 감독 역시 “우리가 캐나다에서 힘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체코도 시차에 적응하느라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날 이집트, 그리고 마지막에 네덜란드를 연달아 3-2로 연파한 것은 투혼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집트와 네덜란드는 2그룹 최종순위가 각각 7위, 3위일 정도로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한국은 정예 멤버가 아닌 전력을 가지고도 정신력을 앞세워 이들을 격파해냈다.
이번 장충 3연전 이전에 열린 사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6연패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을 감쌌다. 선수들 모두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대한 정신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이번 대표팀은 구성부터 힘들었다. “전광인, 송명근, 신영석, 박상하, 이선규까지 주력 5명이 부상이나 재활로 인해 13인 엔트리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 김 감독의 설명.
13인 명단 안에 있는 선수들도 저마다 정상이 아니었다. 세터 한선수와 곽명우 모두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고, 가장 중요했던 네덜란드전을 앞두고도 한선수는 출전이 무리가 될 수 있는 환경인 관계로 곽명우가 먼저 코트를 밟았다. 한선수는 3세트 후반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2년 전 수술을 받은 어깨가 좋지 않은 듯 몸을 푸는 도중에도 이따금씩 어깨를 만지는 것이 자주 보였다. 그만큼 100%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베테랑 김학민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전을 마치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고, 네덜란드전을 앞두고도 김 감독을 찾아와 선발 출장이 어렵다는 것을 먼저 알릴 정도였다. 하지만 교체 출전은 하겠다고 다짐했고, 들어와 활발한 공격으로 승리를 도왔다. 김 감독은 팀을 위해 희생해준 김학민의 활약상을 언급하며 “13명의 선수들이 하나가 된 부분을 칭찬하고 싶다. 감격스럽다”며 모든 선수들을 칭찬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은 2그룹 잔류와 동시에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다. ‘에이스’ 서재덕을 얻었고, 최고의 수확 정지석도 장차 한국 배구의 대들보가 될 선수라는 것을 입증했다. 이집트와 네덜란드 사령탑은 각각 서재덕, 정지석을 가장 인상 깊은 선수로 꼽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값진 것은 국가의 자존심을 위해 어려운 가운데서도 뭉쳐 투혼을 발휘한 점이다. 한국 배구의 저력은 1~2명의 선수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만천하에 보여줬다. /nic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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