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사자후] '뭣이 중헌지' 생각 없는 WKBL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6.07.06 07: 26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누적관객 수 687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돌풍을 일으킨 공포영화 ‘곡성’의 명대사다. 공사가 다망하신 WKBL 총재님은 요즘 유행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하신 것이 틀림없다. 뭣이 중헌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시기 때문이다. 
▲ WKBL, 뭣을 잘못했냐고? 

WKBL은 5일 이사회를 거쳐 첼시 리 사건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했다. WKBL은 지난 시즌 KEB하나은행과 첼시 리의 모든 성적과 기록을 삭제하고 첼시 리를 WKBL에서 영구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WKBL은 논란의 발단이 된 혼혈선수제도를 폐지한다. 또한 WKBL은 KEB하나은행에게 2016년 외국선수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무조건 최하위 지명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첼시 리의 선수신분을 승인해준 WKBL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신선우 WKBL 총재는 “연맹의 책임도 논의를 했으나 이사회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음 주 재정위원회가 열리면 다시 논의할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WKBL이 무리하게 첼시 리를 승인해줬다는 정황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다. 그간 WKBL은 혼혈선수들에게 일괄적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했다. 하지만 첼시 리측은 그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할머니의 사망증명서, 첼시 리의 출생증명서로 대신했다. 다른 구단에서 반발했지만 WKBL은 첼시 리의 신분을 일단 승인해줬다. 처음부터 첼시 리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았다면 없었을 잡음이었다. 
WKBL 관계자는 “첼시 리의 친부모가 모두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첼시 리의 신분에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WKBL이 승인을 안 해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WKBL이 첼시 리에게만 특혜를 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무리수를 둔 WKBL은 첼시 리의 신분위조로 인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첼시 리가 뛰고 있는 시즌 중에도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WKBL은 취재진을 불러 놓고 첼시 리의 신분을 뒤늦게 확인시켰다. 첼시 리를 국가대표로 밀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WKBL은 아포스티유 인증을 받은 첼시 리의 출생증명서와 조모의 사망확인서를 통해 신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류의 위변조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절 의심하지 않았다.
WKBL은 첼시 리에 대해 검토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이를 무시했다. 그 결과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신선우 총재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신 총재는 이 부분에 대해 반드시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 첼시 리에게 현혹되지 마소 
기자는 입국 후 3일이 지나 첫 연습경기에 출전한 첼시 리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첼시 리는 자신의 한국계 배경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좋아하는 한국음식도 없었고, 한국말도 전혀 못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 아예 관심이 없다고 했다. 20대 중반 처음 여권을 만들면서 자신의 한국계 배경에 대해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 시즌을 치른 뒤 WKBL 시상식에서 본 그녀는 180도 변했다. 첼시 리는 “할머니의 나라인 한국에 대해 궁금했다. 한국에 와서 내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한국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첼시 리의 눈물에 감동을 받았던 팬도 있었다. 
첼시 리가 단시간에 없었던 애국심이 갑자기 생겨 태극마크를 달길 간절히 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첼시 리가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실질적 이득이 매우 크다. 첼시 리가 혼혈선수 신분으로 한국에서 뛰더라도 미국시민이기 때문에 소득에 대한 많은 세금을 한국에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첼시 리가 한국국적을 취득하면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 1/10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 뭣이 중헌지 모르는 WKBL 
검찰이 첼시 리 사건의 수사를 시작한 것이 지난 4월이었다. 그렇다면 WKBL은 이미 최악의 사태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놨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WKBL은 검찰에 모든 것을 맡기고 두 달여 동안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WKBL 관계자들은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를 인신공격하기에 바빴다. 
6월 15일 첼시 리의 서류위변조가 검찰에 의해 사실로 결론이 났다. 프랑스 낭트에서 여자농구 올림픽최종예선을 관람하던 신선우 총재가 일정을 하루 당겨 귀국했다. WKBL이 뒤늦게나마 조속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첫 이사회에서 첼시 리에 대한 징계를 다음으로 미루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났다. 첼시 리 한 명으로 인해 여자프로농구 지난 시즌 전체가 부정을 당했다. 프로구단 한 시즌의 기록이 통째로 삭제되는 것은 한국프로스포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WKBL 출범 후 최고의 위기라 해도 과언은 아닌 상황. 리그의 모든 일정을 전면중지하고 밤을 세서 결론을 내도 모자랄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선우 총재는 각 구단 단장들과 함께 미국연수를 다녀왔다. WKBL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서머리그를 개최하고 기자단 농구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 구단의 고참 선수는 “지금 여자농구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슨 서머리그냐. 첼시 리가 처음 뛸 때 다들 ‘쟤는 뛰면 안 되는 애’라고 따졌었다. 앞으로 후배들이 무슨 희망을 가지고 뛰겠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잘못을 하면 책임을 지고 벌을 받는 것이 이 사회의 상식이다. 여자프로농구 최악의 사태를 만든 신선우 총재 이하 관계자들은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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