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면 재미가 없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 그리고 돌발 변수가 속출하며 진땀나는 시즌이 이어지고 있다. 전반기를 지배했던 몇몇 ‘놀라웠던’(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일을 살폈다.
두산의 질주, 넥센의 화수분
흔히 야구인들은 “선두부터 최하위까지의 승률은 1승2패에서, 2승1패 사이에 모두 들어간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두산은 전반기 83경기를 55승27패1무로 마쳤다. 승률은 6할7푼1리다. 산술적으로 매번 우세 3연전을 해야 이 승률이 나온다는 계산이다. 한때는 7할 승률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어찌됐건 대단한 성적임은 분명하다.

워낙 탄탄한 선발진이 중심에 있었고, 타선도 김현수(볼티모어)의 공백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을 만큼 짜임새가 있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경험을 토대로 팀이 한층 더 강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힘이 다소 빠져 보이는 불펜 등 몇몇 문제를 이겨내고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갈 수 있을지 관심이다.
상위권에서 가장 놀라웠던 팀은 단연 넥센이다. 넥센(48승36패1무)은 전반기를 승패차 +12에서 마쳤다. 강정호 박병호 유한준 손승락의 순차 이탈에 에이스인 앤디 밴헤켄까지 빠져 나가 전력누수가 극심했던 넥센은 시즌 전 예상에서 중·하위권 후보였다. 최하위 추락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새 얼굴이 적시적소에 등장하며 이런 예상을 모두 비웃었다.
삼성-한화, 예상 못한 추락
전반기 최종 순위표는 시즌 전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두 팀이 모든 예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에 올랐던 삼성이 예상치 못한 낙폭으로 추락했고, 팀 연봉 1위 한화도 전반기 중반까지 힘을 쓰지 못했다. 한화는 7위로, 삼성은 9위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역시 주축 선수들의 빈자리가 컸던 삼성은 핵심들의 부상까지 겹치며 우울한 전반기를 보냈다. 100% 전력을 가동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잠시지만 창단 후 첫 10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우승권은 아니더라도 상위권에는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승패차는 -14, 승률은 4할1푼5리로 전반기를 마쳤다. 명가의 위기다.
한화는 5월 말까지 크게 고전했다. 지난 3년간 공격적인 전력 보강에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며 큰 기대를 모았으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승패차 -10, 승률 4할3푼6리의 성적은 엄청난 투자를 한 구단과 팬들의 예상에 적잖이 빗나가는 수치이기는 하다. 역시 마운드 쪽의 부상 누출이 심했다. 더 극단화된 불펜 야구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타선이 힘을 찾고 있다는 점, 외인 투수 라인업이 정비됐다는 점은 기대를 모은다.
꺾이지 않는 타고투저
“조금은 완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던 기대는 허무하게 깨졌다. 타고투저의 바람은 올해 더 강하게 불어 닥쳤다. 올해 전반기 리그 평균자책점은 5.13이다. 이는 지난해(4.87)를 넘어서는 수치이자, 역대급 타고투저의 해였던 2014년(5.21)에 근접하는 수치다. 리그 전체 타율도 2할8푼8리로 2014년(.289)에 근접해있다. 투수들은 올해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타고투저의 숨겨진 원인 중 하나로 짚었던 공인구는 단일화됐다. 그러나 타자들은 공인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수들을 괴롭히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 보유 규정 확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외국인 타자들은 리그를 폭격 중이다. 전반기까지 총 8명의 선수가 2할9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팀 타선에 힘을 보탰다. 타자들의 기량발전 속도가 투수들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경기 시간 단축에 나선 KBO도 고민에 빠졌다.

고액 연봉자들의 수난
많은 연봉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활약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성적은 연봉순이 아님이 다시 한 번 증명되고 있다. 리그를 대표하는 몇몇 고액 연봉자들이 부진 및 부상으로 적잖이 고전한 전반기였다.
투수 쪽에서는 윤석민(KIA)과 에스밀 로저스(한화)라는 국내·외국인 최고 몸값 선수들이 나란히 부상으로 고전했다. 선발로 돌아온 윤석민은 3경기에서 1승2패 평균자책점 3.32의 기록을 남긴 채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다. 공식 몸값만 190만 달러인 로저스는 6경기에서 2승3패 평균자책점 4.30을 기록하고 팔꿈치 수술을 받겠다며 한국을 떠났다.
85만 달러에 계약했던 앨런 웹스터(삼성)도 12경기를 뛴 뒤 부상으로 퇴출됐다. 지난해 좋은 활약으로 올해 125만 달러에 계약한 조쉬 린드블럼(롯데) 또한 평균자책점 6.25의 부진한 성적을 냈다. 7억5000만 원씩을 받는 장원삼 안지만(이상 삼성)도 속 쓰린 전반기를 보냈으며 5억5000만 원을 받는 배영수(한화)는 부상으로 전반기를 모두 날렸다.
타자 쪽에서도 김태균(한화) 최정(SK) 등이 부침을 겪었다. 초반 부진했던 김태균은 81경기에서 타율 3할2푼8리, 54타점으로 반등한 채 전반기를 마쳤다. 그러나 홈런은 7개에 그쳤다. 16억 원의 연봉을 고려하면 가격대비 성능비가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최정은 홈런 20개를 쳤으나 타율이 2할6푼3리에 머물렀다. 연봉 8억 원의 이병규(LG)는 팀 내 노선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 경기도 1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비운을 맛봤고 95만 달러짜리 외인 선수인 아롬 발디리스(삼성)는 부상으로 32경기 출전에 그쳤다.
팀 연봉도 그랬다. 연봉이 성적과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총액 기준 압도적인 리그 팀 연봉 1위 팀인 한화는 7위, 2위 삼성은 9위였다. 3위 LG와 4위 롯데 또한 선수단이 몸값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팀 연봉 최하위 넥센은 3위에 올랐고, 8위 NC는 2위를 기록했다.

에이스와 거포의 탄생
부상 등으로 부진했던 선수들이 있었다면,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선수들도 나오기 마련. 투수 쪽에서는 올 시즌이 1군 첫 시즌인 신재영(넥센)이 전반기 10승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다승 2위·평균자책점 3위에 오르며 넥센의 안목을 증명했다. 신인왕은 사실상 확정됐다는 평가.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분전, 한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장민재도 자신의 이름을 리그 전체에 알린 전반기였다.
야수 쪽에서는 ‘하늘이 키운다’는 거포 자원이 둘이나 나타났다. 만년 유망주였던 김재환(두산)과 최승준(SK)이 그 주인공. 김재환은 22개, 최승준은 19개의 홈런을 치며 토종 홈런왕 경쟁에 나섰다. 김재환은 KBO가 시상하는 월간 MVP에서 5월 수상자가 됐고 최승준은 6월 수상자로 화려한 비상을 알렸다. 김현수의 자리를 완벽히 메운 박건우(두산), LG 야수진 리빌딩의 선봉장인 채은성, 전체 타율 2위에 오른 고종욱(넥센)도 새로운 스타로 빼놓을 수 없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