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의 이글아이] 다짐을 현실로, 한화 전반기 MVP 정근우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6.07.15 06: 40

"우리 팀 올라갈 겁니다. 좋은 날 올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지난 4월22일 잠실구장. 전날 사직 롯데전에서 한화는 7연패를 끊고 서울로 올라왔다. 연패를 끊은 다음 날 한화 주장 정근우(34)는 "그동안 경기를 계속 지니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었다. 이기는 것만큼 좋은 게 없더라. 모처럼 잠을 푹 잤다"며 웃어보였다. 
사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사직 원정길에 앞서 선수단은 단체로 삭발을 하며 결의를 다졌다. 우승 후보로 평가받은 한화의 끝 모를 추락과 논란으로 시끌벅적하던 그때, 정근우는 선수단 대표로 언론 관계자들을 자주 상대했다. 연패 탈출 다음날이었던 이날도 그런 하루였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했다. 달갑지 않은 관심에도 정근우는 웃었다. 그는 "팀이 지금 어려운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올라갈 것이다. 우리 팀에도 분명 좋은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아직 시즌 초반이고, 경기가 많이 남아있다. 앞으로 올라갈 시간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정근우의 의지와 다르게 한화는 당시 두산과 잠실 3연전을 싹쓸이패했다. 시즌 성적 3승16패 승률 1할5푼8리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4월이 지나 5월이 되어도 침체는 점점 깊어졌다. 정근우의 말도 헛된 다짐으로 끝나는 듯했다. 주장의 약속은 이뤄질 수 없는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3개월이 흘러 다시 찾은 잠실구장, 한화는 LG를 상대로 2승1패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전반기를 마쳤다. 시즌 성적은 34승44패3무 승률 4할3푼6리. 10위에서 9위 그리고 8위에서 7위까지 올라왔다. 그 중심에 바로 정근우가 있었다. 공수주를 넘나드는 맹활약으로 한화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시즌 성적은 78경기 타율 3할1푼4리 102안타 12홈런 53타점 63득점 17도루 36볼넷 32삼진 OPS .863 득점권 타율 4할1푼1리. 
기록에 드러나지 않는 몸을 사리지 않은 전력 질주, 다이빙캐치는 정근우의 진정한 가치. 주장으로서 풀타임 첫 시즌을 보내는 어린 후배들에게 정신적인 부분을 어루만져줬다. 하주석은 "시즌 초반 수비에서 실책으로 힘들었는데 근우형이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다'며 격려해준 게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양성우는 "풀타임 시즌은 처음이라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근우형 말대로 복잡한 생각 없이 단순하게 생각하니 편해졌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도 정근우에게 "네가 뭐 잘한 것 있다고 인터뷰 하냐?"면서도 바라보는 눈빛의 애정과 입가의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아마 김 감독의 '마음 속 MVP'일 것이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정근우에게 4월의 다짐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히 기억난다.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고도 4~5월에 너무 안 좋아 힘들었다. 솔직히 그때 분위기로는 정말 최하위로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도 없지 않았다"며 "선수들이 이 악물고 열심히 해줘 주장으로서 고마웠다. 모두 포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근우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도 각자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해주면서 팀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전부가 하나 된 결과다"며 "초반에 부진이 너무 깊어지는 바람에 어수선했을 뿐 원래 이 정도를 할 수 있는 팀이다. 그동안 잃어버린 것을 하나하나씩 되찾아오고 있고, 후반기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고 자신했다. 
후반기에는 어떻게 될까. 정근우는 "투수들이 잘 던져주고 있고, 야수들도 잘 맞고 있다. 서캠프라는 좋은 투수가 와서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리 선수들 모두 조금 더 안정을 찾고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다짐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정근우의 약속, 후반기에도 지켜질지 기대된다. /한화 담당기자 waw@osen.co.kr
[사진] 잠실=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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