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삼성전자는 미국의 IT 공룡 애플을 상대로 광고 공세를 펼치면서 ‘일체형 배터리’의 불편함에 초점을 맞춘 적이 있다. 늘 부족한 배터리 용량 때문에 어디를 가든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를 찾는 모습을 두고 '벽 끌어안은 사람(Wall Hugger)'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교체형 배터리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그랬던 삼성전자가 ‘갤럭시 S6’ 이후 그들도 일체형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일체형의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콘텐츠가 충실하다면 사용자들도 충분히 감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전기차가 가진 가장 큰 숙제는 배터리 용량과 충전 인프라였다. 두 문제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충전 인프라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전혀 개선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배터리 용량’ 면에서는 좀 달라진 시각을 두어도 될 듯하다. 적어도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 이후부터 라면 말이다.

아이오닉 전기차로 부르는 게 훨씬 입에 편하지만 현대자동차는 공식 명칭을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정했다. 그리고 이 차의 완충 후 주행 가능거리는 191km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담당 기자들을 상대로 이 차를 서울 시내에서 직접 몰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충분한 주행 거리와 지-정체가 반복 되는 도심 주행을 반영한 코스에서 테스트를 해보게 했다. 일단 배터리에 대한 결론은 먼저 짓고 갈 수 있겠다. 그 동안 경험했던 순수전기차들(주로 수입차들이지만)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배터리가 언제 방전 될 지 모른다는 불안 말이다.

그러나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적어도 장거리 운행이 아니라면, 출퇴근을 위주로 하는 일상주행이라면 용량에 대한 불안감을 일단 접어두어도 될 듯했다. ‘일체형 배터리’의 스마트폰을 예를 든다면 두세 개씩 보조 배터리를 챙기고 다녀야 하는 세대는 지나 있었다. 물론 하루 종일 전화 통화를 해야하는 직업이라면 이 비유는 맞지 않다.
이름을 ‘아이오닉 일렉트릭’이라고 지은 게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처럼 디자인도 완성도는 떨어진다. “나는 전기차입니다”라는 티를 너무 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이라는 이름이 불편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첫째를 ‘일식’이라 짓고 그 후를 ‘이식’ ‘삼식’으로 짓는 것처럼 성의 없어 보인다.
이름에서도 그렇고 생김새에서도 그렇고 ‘전기차’를 떼 버리는 결단의 시점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전기차를 전기차가 아닌, 그냥 자동차의 한 종류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영화 ‘아이언맨’의 캐릭터처럼 입을 마스크를 씌워버렸다. 내연기관이 아니니 모터를 라디에이터 그릴로 식힐 필요가 없고, 공기역학을 감안한 선택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마스크로 입을 봉해 버린 듯한 앞 얼굴은 갑갑하다.

독자적인 디자인을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인 게 현실이다. 아직은 시장도 작은 데다, 191km를 달리는 전기차를 만들어냈다는 상징성 외에 크게 기대하는 게 없기는 할 터다. 그러나 테슬라 전기차가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을 휩쓸 일을 결코 없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실내로 들어가면 바깥 디자인에 실망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기어박스에 기어봉은 아예 사라지고 없다. 대신 모드 선택 버튼이 자리잡고 있다. ‘주차’ ‘중립’ ‘주행’ ‘후진’으로 구성 된 4개의 버튼이 ‘중립’을 중심으로 방사향으로 배치 돼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무선 충전이 가능한 스마트폰 거치 홈이 마련 돼 있다. 무선 충전을 지원하는 스마트폰 소지자라면 전화기를 툭 던져놓는 것만으로 충전이 시작 된다.

기어박스 뒤쪽으로는 드라이브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버튼과 시트의 ‘통풍’과 ‘열선’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자리잡고 있다. 센터콘솔의 구성은 이 차의 완전히 새로운 구동계를 실감하게 해 준다. 이 차는 ‘스위치’ 하나로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는 ‘전기전자체’였다.
재미 있는 것은 D컷 핸들과 그 뒤쪽에 자리잡은 패들시프트다. 이 구성은 다른 차라면, 스포츠 드라이빙으로 통하는 아이콘이다. 그런데 아이오닉이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차였던가?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패들 시프트는 회생제동(regenerative brake, 감속 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켜 배터리를 충전하는 브레이크 방식)을 구현하는 차들, 즉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또는 수소연료전지차에서 종종 장착하는 ‘회생브레이크’ 조절 장치였다. 제로(0) 단계에서 3단계까지 회생브레이크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게 했는데, 그 강도 조절을 패들시프트로 할 수 있게 했다.
이 장치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올림픽대로에서 패들시프트는 푸트 브레이크를 대신해 감속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0단계에서는 감속 시 회생 브레이크 느낌이 거의 없었다. 이 때는 앞 차가 없는 환경에서 타력 주행을 하기에 적합했다.

1~3단은 회생 브레이크가 걸리는 정도를 다르게 만들었다. 3단으로 높일수록 브레이크가 잡히는 강도는 강해지고, 그만큼 충전 효율도 높아진다. 앞차와의 거리와 감속의 정도에 따라 패들 시프트를 조작하며 정체구간을 지날 수 있었다.
물론 전기차는 기본적으로 회생제동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푸트 브레이크만 밟아도 남는 에너지는 배터리로 가서 쌓이기는 한다. 운전대에 달린 패들시프트는 회생브레이크이크에만 작동하기 때문에 에너지 재생효율을 더 높일 수 있고, 풋브레이크로부터 발을 편하게 했으며 손으로 속도를 조절한다는 색다른 재미도 줬다.
그렇다면 D컷 스티어링 휠은 왜 달린 걸까? 주행 모드 변화에 답이 있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주행모드 선택 기능(노멀, 에코, 스포츠)이 있는데 스포츠모드의 운전 재미가 쏠쏠했다. 노멀과 에코모드가 상대적으로 너무 점잖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스포츠모드에서의 운전은 상당히 경쾌했다. 스포츠모드와 D컷 휠은 제법 어울리기도 했다.
초기 단계의 자율주행 기능들이 대거 장착 된 점도 놀랍다. 앞차 또는 보행자와 충돌이 감지 될 때 이를 알려주는 전방추돌 경보시스템(FCWS), 앞차와의 거리를 감지하여 조절하며 달리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컨트롤(ASCC), 차선을 인식해 알아서 핸들을 돌려주는 차선 유지 보조시스템(LKAS), 아웃사이드미러로 확인 되지 않는 사각지대 차량을 감지하는 후측방 경보시스템(BSD) 등을 갖추고 있다.
ASCC와 LKAS는 자율주행으로 가는 가장 기본 되는 기술이다. 앞차와 간격을 맞춰 운전자가 희망하는 속도로 달려주고, 알아서 차선까지 유지해 주면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는 한결 편해진다. 물론 이 기술은 아직은 기초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보조 기능’으로만 써야 한다. LKAS를 켜고 강변북로 잠실대교에서 영동대교에 이르는 구간을 테스트했다. 한강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비해 곡선과 높낮이가 심한 도로다. 손을 완전히 뗄 수 없어 가볍게 잡은 채 움직임을 느꼈다. 핸들을 꺾는 동작이 매끄럽지는 못했다. 초보 운전자가 핸들을 돌리는 것처럼 잘게 쿨럭거렸다. 그렇지만 곡선구간에서도 차선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반환지점에서는 자동주차 시범도 있었다. 운전자가 내린 상태에서 차가 혼자 후면으로 T자 주차를 했다. 모든 차가 이 기능을 갖추고 나면 새 차 보유자들은 ‘문콕’ 사고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자동주차 시스템을 개발 완료했지만 이번 출시 차량에는 장착하지 않았다. 여건이 무르익을 때를 기다리며 장착 시기를 점치고 있다.
시승코스는 서울 여의도 ‘서울 마리나’를 출발해 서울 강동구 고덕동 ‘스테이지28’을 돌아오는 왕복 60km 구간이었다. ‘서울 마리나’를 나서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한남대교 남단에서 강남 시내로 들어갔고, 도산대로-영동대로의 혼잡구간을 지났다. 다시 영동대교를 건너 강변북로, 구리암사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목적지에 도달했다.
딱히 연비가 잘 나오게 운전하지도 않았다. 도로 흐름에 따랐고, 교통이 원활할 때는 스포츠모드로 경쾌한 주행을 즐겼다.

출발하기 전, 모니터에서 확인한 주행가능 거리는 183km였다. 시승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시동을 미리 켜 놓고, 에어컨을 가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복 60km를 주행하고 난 뒤 계기반에 나타난 주행 가능 거리는 139km였다. 공인연비 기준으로 60km를 달렸으면 주행가능거리가 123km가 나와야 하지만 17km가 너 남았다. 실 연비가 공인 연비보다 더 나왔다는 얘기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공인 복합연비는 6.3km/kWh다. 1kWh(킬로와트시)의 에너지로 6.3km를 달릴 수 있는 에너지소비효율이다. 기자가 운전한 차는 평균 연비로 10km/kWh를 얻었다. 이날 시승에 참가한 대부분의 기자들도 공인연비 이상을 기록했다.

연비는 회생제동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 회생제동은 천천히만 달린다고 에너지를 아끼는 시스템이 아니다. 충분히 달리고, 안전하게 속도를 줄이 되, 의미없이 증발하는 에너지가 없도록 하면 최고 효율을 보인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전한 가장 큰 메시지는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 해소였다. 자체 배터리 용량으로 60km를 달리고도 139km를 더 달릴 힘이 남아 있었다. 60km는 수도권의 웬만한 외곽지역에서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다. 심각한 교통체증을 감안하더라도 귀가 도중 방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배터리가 두둑하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 ‘일체형 배터리’를 채택한 스마트폰은 어떻게 보편화가 됐을까? 첫 조건은 배터리 성능의 개선이다. 일반적 상황에서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용량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두 번째는 습관화다. 사무실에 가면, 또는 집에 도착하면 스마트폰을 보관하는 자리가 곧 충전기 옆이다. 자연스럽게 충전기 잭을 연결한다. 이 과정이 일상화 됐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주행 능력이라면 남은 숙제는 충전 인프라다. 출퇴근과 업무에서 차를 쓰고 귀가하면 당연한 절차로 충전 플러그를 꽂을 수 있는 환경. 이 환경이 갖춰지면 전기차에서 오는 불편함은 더 이상 없을 듯하다. 배터리 일체형 스마트폰의 그것처럼 말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