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24, 토트넘)의 가슴은 누구보다 뜨거웠지만 머리는 차갑지 못했다.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한국의 도전이 멈춰섰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오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미네이랑 주경기장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온두라스와 8강서 후반 15분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재현하려던 한국의 2회 연속 메달 꿈도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스포트라이트는 와일드카드 공격수 손흥민에게 집중됐다. 앞서 조별리그서 승리를 배달한 손흥민은 온두라스전서 비운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했다. 과욕에 울었고, 상대 수문장의 선방쇼에 탄식했다. 다섯 차례의 찬스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 손흥민은 후반 15분 결정적인 패스미스로 결승골의 빌미까지 제공했다. 의심의 여지 없는 패배의 장본인이었다.

손흥민은 소속팀 시즌 준비로 가장 늦게 리우에 당도했다. 우려는 기우였다. 피지, 독일과 조별리그 1, 2차전서 연달아 골맛을 보며 8강행의 일등공신을 자처했다. 온두라스전서 손흥민의 발끝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국내 축구 팬들은 그가 골을 넣고 멋진 세리머니 하길 기대했다. 온두라스는 경계대상 1호로 손흥민을 지목했다.
손흥민은 이날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8개의 슈팅과 5개의 유효슈팅을 때렸다. 볼터치도 74회로 박용우(92)와 심상민(87)에 이어 3번째로 많았다. 패스성공률은 69.2%였다. 활발히 움직이면서 누구보다 골 욕심을 냈다.
아쉬운 건 결정력만은 아니었다. 냉철한 머리가 필요했다. 손흥민은 자신에게 집중된 온두라스의 시선을 십분 활용하지 못했다. 빈 곳의 동료에게 패스를 해야 할 장면에서도 여지없이 돌파를 하거나 슈팅으로 이어갔다.
손흥민은 누가 뭐래도 한국 축구의 보물이다. 자신을 향한 미디어와 팬들의 과도한 관심도 즐길 줄 아는 슈퍼 스타다. 다만 때로는 뜨거운 가슴이 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온두라스전이 그랬다. 손흥민은 차가운 머리로 판단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게 성급했다. 슈팅도 판단도.
손흥민은 추가시간 3분이 끝남과 동시에 종료 휘슬이 울리자 심판진에 다가가 강력 항의했다. 그라운드에 의도적으로 누워 시간을 끌던 온두라스였기에 그럴만도 했지만 그의 짙은 아쉬움이 옅보이는 대목이었다.

손흥민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서 조별리그 탈락의 아쉬움을 삼켰다. 당시 벨기에와 조별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려 큰 화제가 됐던 손흥민은 2년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며 또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손흥민의 메달 도전이 좌절되면서 병역 문제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가 병역면제 해택을 받으려면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따거나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거둬야 한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소속팀 레버쿠젠의 반대로 차출이 무산됐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제 손흥민에게 남은 기회는 201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뿐이다. 와일드카드로 뽑혀 금메달을 따야 하는데 쉽지 않은 미션이다.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이 상무나 경찰청 축구단에 들어가려면 만 27세 이전에 K리그로 돌아와 최소 6개월을 뛰어야 한다.
손흥민 개인으로 보나 한국 축구로 보나 온두라스전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한 판이었다./dolyng@osen.co.kr
[사진] 벨루오리존치(브라질)=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