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솔직하다] 한화의 불펜 야구, 실리조차 놓쳤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9.05 05: 59

한화는 최근 2년간 ‘불펜 야구’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마운드 운영에서 불펜 투수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불펜 투수들의 ‘혹사’라는 말이 항상 따라 다녔다. 이에 대해 결정권자인 김성근 한화 감독은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이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항변이다.
"선수가 없다고 하면 안 된다"에서 “투수가 없다”라고 말을 바꾼 김 감독은 ‘못 믿을’ 선발 투수 대신 ‘그나마 믿음직한’ 불펜 투수들에 방점을 찍고 마운드를 운영 중이다. 벤치가 적극적으로 경기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화 불펜 투수들의 활용도는 극단적인 수준이다. 수치로 보면 ‘역대급’ 불펜 야구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한화는 4일 현재 올 시즌 1085이닝 중 선발 투수들이 고작 483이닝을 던졌다. 리그 최하위다. 이에 비해 불펜 투수들은 무려 602이닝을 소화해야 했다. 불펜 이닝 2위인 kt(509⅔이닝)보다 거의 100이닝이 많다. 시즌이 끝날 시점, 이 차이는 더 벌어져 있을 것이 확실하다. 한화 불펜 투수들은 다른 팀에 비해 10경기 이상 더 시즌을 치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 피로도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전례를 찾기 어렵기도 하다. KBO 공식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역대 불펜 소화 이닝이 선발의 그것을 능가하는 사례는 이번이 8번째다. 올해 한화 이전 1982년 삼미(선발 339이닝·불펜 353이닝), 1985년 해태(선발 460⅔이닝·불펜 528이닝), 1989년 MBC(선발 533⅓이닝·불펜 536⅓이닝), 1997년 쌍방울(선발 518⅓이닝·불펜 591⅓이닝), 1998년 쌍방울(선발 519⅓이닝·불펜 596이닝), 2011년 SK(선발 579⅔이닝·불펜 612⅔이닝)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네 번의 사례는 사령탑이 같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선발과 불펜의 개념이 명확치 않았던 KBO 리그다. 불펜 투수가 다승왕에 오르기도 하고, 두 자릿수 승수와 세이브를 동시에 따내는 선수들이 흔했다. 그러나 분업화가 정착됐다고 믿었던 21세기에 이런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찾기 어렵다. 특히 올해 한화는 불펜 투수들이 선발보다 100이닝 이상을 더 소화하고 있다. 2011년 SK보다 더 심하다. KBO 리그 역사상 이런 팀은 없었다.
가뜩이나 선발에 비해 더 큰 피로도가 쌓이는 불펜 투수들에게는 큰 희생이다. 그렇다면 성적이라도 나야 하는데, 그마저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게 한화 불펜 야구의 가장 큰 문제다. 한화는 올 시즌 5.87의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부상자가 적지 않았지만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 2년차인 kt보다 떨어진다는 점은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리그 평균 이상의 위용이라고 평가됐던 불펜 평균자책점도 5.32로 리그 평균(5.09)보다 낮은 7위다. 벤치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고 투수를 바꿔도 보지만, 결과적으로는 리그에서 가장 실패 확률이 높은 팀이 됐다. 기출루자 득점허용률(IRS)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한화는 올해 396명의 기출루자가 있었고, 이 중 40.7%인 161명이 홈을 밟았다. 리그 최하위 성적이다.
불펜 동원이 많은 만큼 기출루자의 상당수 또한 불펜 투수들이 남긴 것이었다. 벤치의 승부수, 교체 타이밍이 실패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선수가 없어서”라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당장 36억 셋업맨이나 84억 마무리가 없는 삼성(30.2%), kt(31.8%), KIA(32.1%), 두산(33.8%)은 한화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라는 점에서 변명은 궁색해 보인다.
불펜 야구와 벤치 개입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에서 선수들의 가치까지 훼손되고 있다. 야구는 팀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기록이 개인별로 남는다는 점에서 개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관리를 받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불펜 투수들의 개인 성적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송창식 심수창 박정진은 팀을 위해 궂은일을 감수하며 던졌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 석 자를 지우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B~C급 투수들의 성적일 뿐이다. 지금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 10년 뒤 이들이 어떤 식으로 기억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더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다. 투수는 던지면 던질수록 닳는다. 많이 던진 선수들은 미래 어느 시점에서 탈이 날 확률이 높아진다. 김성근 감독은 “한계를 넘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그 한계를 넘다 고꾸라지면 야구 인생을 망친다. 특히 위험요소가 더 큰 투수는 최대한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그러나 한화는 이미 그 단계를 지나쳤다는 게 중론이다. 부상자가 많아지고 있고, 재발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SK는 그 후유증을 톡톡히 치렀다.
선수들의 ‘준비 루틴’을 고려하지 않고 선발과 불펜 양쪽에서 돌린 안영명과 김민우는 이미 어깨에 탈이 났다. 민감한 어깨라는 점에서 야구 경력이 망가질 위기다. 박정진은 지난해 막판 공을 던질 수 없는 상태였고, 권혁 송창식도 올해를 완주하지 못하고 결국 쓰러졌다. 이는 남은 선수들의 과부하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연쇄 도산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부상 전력이나 혹사 경력이 있는 선수들의 영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깨를 다친 안영명이나 이미 많은 이닝을 던진 송창식, 혹은 재자격을 취득할 권혁이 FA로 나와도 영입할 팀이 있을지 의문이다. 경쟁이 붙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손해다. 찰나에 몇억이 왔다 갔다 한다”라면서 “이런 선수들의 손해는 벤치에서 보상해주나”라고 되물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답답한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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