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팀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던 정상호(LG)가 지난겨울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다. 경험이 중요한 안방마님의 공백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컸다. 이재원의 주전 포수 등극은 예정된 일이었지만, 이재원의 뒤를 받칠 백업 포수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SK의 우려는 김민식(27)이 깨끗하게 지웠다. 이재원의 백업 포수로 한 시즌을 완주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식은 올 시즌 78경기에서 타율 2할5푼4리, 2홈런, 13타점을 기록하며 이재원과 함께 팀의 안방을 지키고 있다. 엄하기로 소문난 박경완 SK 배터리코치는 “수비에서는 급성장을 이뤘다. 블로킹은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칭찬할 정도로 수비력을 인정받았다. 도루 저지율도 38.5%로 수준급이다.
여기에 후반기에는 방망이도 매섭다. 전반기 49경기에서 타율 1할9푼5리를 기록했던 김민식은 후반기 29경기에서 타율 3할4푼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공·수 모두에서 백업 포수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포수로서는 드물게 우투좌타인 김민식은 그간 방망이 자질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전반기에 쌓인 경험이 후반기 들어 좋은 감과 만나 폭발 중이다.

김민식은 “전반기에도 타격감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잘 맞은 타구가 잡히는 경우들이 있었다”라고 떠올리면서도 “요즘에도 타격감은 괜찮은 편이다. 우연찮게 (이)재원이형이 다쳐서 경기에 나서게 됐고, 안타가 몇 개 나오면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공격 문제까지 깨끗하게 해결한 김민식은 팀이 언제든지 믿고 내보낼 수 있는 당당한 포수로 자리매김했다.
김민식은 올 시즌 단 한 번도 2군에 내려간 적이 없다. 개막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1군에 있었다. 올 시즌 전까지 1군 경력이 단 23경기밖에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볼 수 있다. 김민식은 “전반기 성적이라면 2군에 내려가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붙어 있었다는 점에서 사실 운이 좋았다”라고 수줍어하면서도 “어쨌든 이런 적은 처음이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시즌이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벤치의 신뢰를 얻고 있지만 보완해야 할 점은 산더미라고 생각하는 김민식이다. 지난해 가고시마 캠프부터 강훈련을 했던 김민식은 “볼 배합이나 수비에서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있다. 특히 주루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군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쌓이는 경험은 긍정적이다. 김민식은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다른 포수들의 볼 배합이나 베이스러닝, 타격 등을 보면서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1군은 수준이 확실히 높다”라고 즐거워했다.
마음고생도 하면서 진짜 1군 선수가 되고 있는 김민식이다. 김민식은 올 시즌 이재원의 두 차례 부상 때 주전으로 마스크를 썼다. 다만 그 기간 중 팀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김민식은 “재원이형이 있을 때는 팀이 5할을 했는데, 다치고 나서 내가 포수를 볼 때 팀 성적이 떨어졌다. 내 개인 성적은 좋았는데 경기를 지니 ‘나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팀을 생각하는 고민 속에서 선수는 눈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김민식은 예상보다 빨리 그런 길을 걷고 있다.
김민식은 지난 7일 인천 KIA전에서 브라울리오 라라와 호흡을 맞췄다. 라라가 김민식과 배터리를 이룰 때 성적이 더 좋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 올 시즌 평균자책점이 5.68인 라라는 김민식과 함께 한 17⅔이닝에서는 1.5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이날도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김민식은 이에 대해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표본이 많지 않아 그렇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라라의 말은 다르다. 라라는 “체인지업을 던지고 싶은 타이밍에, 김민식이 딱 체인지업을 요구하더라”라고 웃었다. 경험이 쌓이고 있는 김민식이 좀 더 투수의 마음을 사로잡는 포수가 되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적 사례다.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정상호를 잡지 않은 것이 세대교체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라고 말한다. 김민식의 이런 활약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