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외국인 투수 메릴 켈리(28)는 KBO 리그 무대 데뷔 이후 그다지 운이 좋았던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가치는 누구나 알고 있다. 마지막 남은 한 경기에서 10승을 달성한 뒤, SK가 내미는 재계약 제안서에 시원스레 사인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켈리는 9월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6⅔이닝 동안 7피안타(1피홈런) 1볼넷 5탈삼진 3실점을 기록하며 호투했으나 팀 타선이 시원스레 터지지 않은 까닭에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또 한 번 잘 던지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해 10승 도전을 다음으로 미뤘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려 있는 팀이 막판 분전하며 5-3으로 승리했다는 점에서 그 대등한 판을 만들어준 켈리의 가치는 환히 빛났다.
또한 켈리는 올 시즌 처음으로 200이닝을 돌파(200⅓이닝)한 선수가 됐다. 투수로서 한 시즌 200이닝을 던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관리가 잘 됐음은 물론, 좋은 투구 내용으로 오랜 기간 마운드에 남아있었다는 말이 된다. 실제 켈리는 올 시즌 31번의 등판에서 20번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지난해 30경기에서 181이닝을 던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 시즌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미리 결론지어도 틀리지 않다.

이런 켈리의 마지막 화두는 10승 달성이다. 켈리는 지난해 30경기에서 11승10패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다만 내용에 비해 승수가 조금 적은 감은 있었다. 올해는 더 심하다. 타선과 엇박자가 난 이유다. 31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을 3.68까지 끌어내렸지만 9승8패에 머물고 있다. 최근 세 경기에서도 모두 6⅔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기록하는 빼어난 투구 내용에도 모두 노디시전(승패무관) 처리됐다.
이제 켈리에게 남은 경기는 딱 1경기다. 로테이션상 켈리는 오는 6일 마산구장에서 열리는 NC와의 경기에 시즌 마지막 등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9승과 10승은 1승 차이지만, 그 명예의 무게는 1승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 기회는 딱 1번이다. 켈리와 동료들이 그 가능성을 살리며 팀의 막판 기적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더 주목을 받는 것은 재계약 여부다. SK는 켈리를 일찌감치 재계약 대상자로 결정했다. 충분히 실적을 증명했고, 문화 측면에서도 한국 적응을 끝냈다. 말이 많은 선수는 아니지만 팀 동료들과의 사이도 비교적 원만하다. 이만한 선수를 다시 데려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올해 75만 달러였던 연봉도 100만 달러 이상으로 뛸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다만 켈리는 아직 재계약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SK를 최우선 협상자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이 가슴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 켈리는 만 28세로, 현재가 절정의 몸 상태를 보여줄 때다. 우리처럼 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MLB 구단들은 보통 26세에서 29세 사이를 선수들의 전성기로 본다. 켈리로서는 지금이 마지막 도전 시기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향후 거취를 놓고 SK의 총력전이 예상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