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김유정이 성인 여배우로 성장한 다른 점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6.11.08 15: 59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최근 2~3년 새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 속에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를 손꼽으라면 큰 이견 없이 SBS ‘별에서 온 그대’ KBS2 ‘태양의 후예’ 그리고 ‘구르미 그린 달빛’일 것이다.
주인공인 김수현-전지현, 송중기-송혜교, 박보검-김유정 커플이 가장 큰 수혜자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른 듯하다. 특히 송중기와 송혜교의 경우 그 격차가 가장 클 것이라는 게 방송가의 중론이다.
주중 미니시리즈의 경우 시청층은 20~30대 여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여배우보다 남배우가 살짝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김수현과 송중기가 가장 각광받는 한류스타로 등극하고, 지금 박보검이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현상은 그런 이유다.

여배우들도 상황이 조금씩 다르다. 송혜교는 2013년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꼭짓점을 찍었다. 2004년 ‘풀 하우스’의 어설픈 연기는 사라졌고 당당한 연기파 배우가 됐다. ‘태양의 후예’는 그저 그녀가 얼굴이 예쁜데 연기까지 잘하는 배우임을 ‘새삼스레’ 입증했을 따름이다.
이에 비해 전지현과 김유정은 큰 혜택을 입었다.
전지현은 ‘부활’ ‘제2의 전성기’ 등의 표현이 적절하다. 송혜교나 김유정과 달리 전지현은 데뷔 때부터 ‘슈퍼 루키’였다. 정형미인과는 다른 개성 있는 미모에 당시엔 보기 힘든 서구형 몸매가 단연 돋보였고, 그 모든 완벽한 외모는 남자들의 영원한 판타지인 긴 생머리가 완성했다. 그래서 그녀는 1998년 드라마로 데뷔하자마자 각종 CF를 휩쓸며 광고의 여왕이 됐고 자연스레 스크린으로 옮겨 ‘엽기적인 그녀’로 크게 성공하며 글로벌스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녀는 ‘엽기적인 그녀’가 전부였다. 일찍이 걸 크러쉬의 성향을 가진 섹시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지닌 매력을 뿜어냈지만 그건 ‘엽기적인 그녀’ 캐릭터에만 어울렸을 뿐 다른 진지한 배역에선 부족한 연기력 탓에 관객들을 전혀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녀의 작품선택의 혜안이 부족한 점도 배제할 수 없다. 광고와 영화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게다가 이젠 나이까지 먹었다. 결혼도 했다. 원래 연기파로서 숱한 한국영화의 발전에 기여했고,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도 수상한 전도연이 유부녀가 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핸디캡을 한방에 날려준 작품이 바로 ‘별에서 온 그대’다. 한때 김희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 한류여배우였지만 어느새 침잠된 그녀의 이름값이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이다. ‘엽기녀’를 연상시키는 ‘진상 캐릭터’가 한몫 단단히 했다. 부족했던 연기력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던 세월의 도움도 작용했다.
오는 16일부터 방송될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아마 전지현의 ‘제2의 전성기’가 롱런가도를 달릴지, 이민호가 영화 ‘강남 1970’을 겪으면서 얼마나 성숙해졌을지 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그런 전지현에 비해 김유정은 매우 모범생적인 코스를 차근차근 밟고 올라왔다. 2003년 4살 때 과자 CF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뎌 이듬해부터 영화를 시작으로 안방과 스크린을 오가며 아역배우로서 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은 그녀는 2012년 ‘해를 품은 달’과 2014년 ‘비밀의 문’으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린 뒤 ‘구르미~’로써 이제 17살에 성인연기자가 됐음을 알렸다. 2년 터울로 사극을 통해 성장을 완성했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대중은 소녀배우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 대배우로의 성장을 예감케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여배우를 종종 봤다. 그런 맥락에선 김유정에게도 함정은 충분히 존재했다. 전지현의 몸매나 김태희의 미모와는 다른 차원이었고, 문근영의 연기력이나 어릴 때부터의 존재감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훌륭한 작품선택 능력과 남다른 캐릭터 분석력과 소화력, 그리고 그에 부응한 작가의 필력이었다.
김유정이 맡았던 홍라온은 지금까지 삼놈이란 남자로 살아온 비운의 인물이다. 체제전복을 꾀한 ‘역적’ 홍경래의 숨겨진 딸이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기에 연유도 모른 채 엄마의 강요에 의해 남장을 하고 저잣거리에서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고 연애상담을 하며 살아온 상놈이다.
하지만 그녀는 선천적으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선한 인물이다. 삼놈의 뜻을 스스로 ‘뭐든지 할 놈, 뭘 해도 될 놈, 잘나서 장차 날 놈’이라고 해석하며 희망을 안고 살아갈 정도다.
이런 중성적 캐릭터가 바로 김유정을 성장케 한 결정적인 도우미였다. 만약 김유정이 4회 때 청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에서 여장을 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춤을 춘 장면을 첫 회부터 내보냈다면 김유정의 성인변신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묘한 중성적 매력을 풍기게끔 남장을 시키고, 누가 봐도 여자인 것을 금세 알 법도 한데 드라마 속 모든 이들이 그를 남자로 당연시하게끔 설정한 배경이, 그래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하루빨리 그녀가 여자임을 밝히고 영(박보검)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눈 빠지게 기대하게 만든 게 그녀의 성장의 촉진제가 됐던 것이다.
천한 신분에, 그렇게 산 탓에 거친 손에, 역적의 딸에 등등 뭣하나 하연을 앞설 수 없는 라온이지만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영은 오매불망 그녀만을 바라봤다. 그런 상황 역시 작가가 부린 마법 중 하나였다. 물론 김유정이 라온과 삼놈을 오가는 이중적 캐릭터를 절묘하게 소화해내지 못했더라면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전지현에게 매우 중요한 최종 면접시험이라면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는 김유정에게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동시에 점유하거나 더 뻗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변곡점이다. 공교롭게도 둘 옆엔 차태현이 있다. 전지현이 ‘엽기적인 그녀’가 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차태현은 ‘푸른 바다의 전설’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지원사격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에선 아예 김유정의 파트너가 돼 다시 한 번 ‘엽기녀’ 만들기에 나섰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2’가 실패한 건 그의 동력이 다해서가 아니라 시나리오부터 거의 모든 게 전편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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