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웃음으로’ 윤희상-김문호의 특별한 대결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12.04 15: 52

윤희상(31·SK)의 표정은 비장함 속에 웃음이 숨겨져 있었다.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방망이로 한 선수를 지목했다. 내야 수비를 보고 있었던 김문호(29·롯데)가 그 주인공이었다. 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6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 중 벌어진 일이었다.
팬들은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두 선수 사이에 생각하기 싫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25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SK와 롯데와의 경기였다. 당시 김문호가 친 타구가 윤희상의 급소 부위를 강타하며 문제가 생겼다. 김문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그 사건 이후 윤희상은 5월 16일 한화전에서 타구에 오른쪽 소지를 맞아 그대로 시즌을 접었다. 두 번이나 타구에 맞은 윤희상은 아직도 강습타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김문호는 2년 선배인 윤희상에게 자주 연락을 해 안부를 물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타구가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윤희상은 “네 잘못이 아니다. 괜찮다”며 오히려 후배를 격려했다. 윤희상은 “그 전까지는 사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연락을 자주하면서 친해졌다”고 웃었다.

실전에서는 양보없는 대결을 벌이는 두 선수지만 이날은 이벤트 경기였다. 오히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윤희상이 타석에 나설 때 김문호를 호출해 투·타 대결을 하는 것으로 사전에 입을 맞췄다. 윤희상이 방망이를 김문호를 향해 겨누자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흘러나왔고 마운드에 있던 김현수(볼티모어)는 즉시 공을 넘겼다.
그런데 사전에 연출하지 않은 돌발상황이 생겼다. 마운드에 오른 김문호가 윤희상을 향해 절을 한 것. 이는 약속되지 않은 것이었다. 윤희상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투·타 대결을 하기로는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절을 하더라. 나도 어쩔 줄을 몰랐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고교 시절 방망이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았던 윤희상은 양신팀의 선발 4번 타자로 출전, 첫 타석에서 김태균(한화)의 폼을 흡사하게 따라해 팬들에게 큰 웃음을 준 후였다. 기세를 이어간 윤희상은 김문호의 초구를 받아쳐 좌익수 옆에 떨어지는 라인드라이브성 2루타를 쳤다. 제대로 받아친 타구였다. 윤희상은 2루에 안착해 환호했고 김문호도 웃음과 함께 다시 마운드를 김현수에게 넘겼다.
복수에 성공한 윤희상은 화려한 쇼맨십은 물론 연신 시원한 타구를 날리며 경기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섰다. 3루 수비에서도 몇몇 강습타구를 매끄럽게 잡아내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자리에 위협을 느낀(?) 팀 동료 3루수 최정은 오타니 쇼헤이(니혼햄)와 같은 투타 겸업 가능성에 대해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지만 선수들은 대개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있다. 아무래도 우리 특유의 선·후배 문화가 있겠지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서 아픔을 공유하고 기쁨은 축하해준다. 사석에 나가면 소속팀의 글자를 떼고 진솔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윤희상과 김문호는 더 단단해진 우정을 쌓아나가고 있다.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