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추도사]故이정후, '그 아이'가 이렇게 자랐었는데...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6.12.13 16: 08

*편집자 주 OSEN은 지난 2006년 고 이정후(32)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아역배우 때 당대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던 그가 연예계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OSEN이 한 걸음에 달려가 만났다. 당시의 초롱초롱한 눈매와 야무진 말맵시가 채 잊혀지기도 전에 이정후가 암 투병 끝에 최근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13일 들려왔다. 당시 본지가 게재했던 추억의 인터뷰를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다시 싣는다.
1990년대 아역스타로 손꼽히던 이정후(22)가 성인이 되어 돌아왔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3학년 휴학생 신분이지만 “너무나 연기가 하고파서” 졸업장도 제쳐두고 일선으로 돌아왔다. 
이정후는 최근 활동 재개를 도와 줄 새 식구를 만났다. 인기 리포터 겸 가수 쉐끼루 붐이 소속돼 있는 연예기획사 더쇼 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연기 활동 재개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아역배우로서 이정후의 이력은 매우 화려하다. 1989년 MBC TV 드라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주인공 김희애의 딸로 데뷔해 출연한 작품만 30여편에 이른다. 1993년 MBC 사극 ‘야망’에서는 안방 시청자들을 숱하게 눈물짓게 만들었고, 91년 KBS 미니시리즈 ‘가까운 골짜기’ ‘아스팔트 내 고향’으로 KBS 연기대상 아역상을 수상했다. 1992년 백상예술대상 아역상, 1994년 MBC 연기대상 아역부문 특별상을 받았고 SBS TV ‘장희빈’, KBS TV ‘서궁’ ‘태조 왕건’ 등 주요 사극에 빼놓지 않고 출연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인 2001년 SBS TV 아침드라마 ‘이별 없는 아침’을 마지막으로 연기활동을 멈추었던 이정후는 작년 11월 KBS 2TV ‘드라마시티’의 ‘시은 & 수하’편으로 연기를 재개했다. 그리고 올 초 KBS 2TV ‘굿바이 솔로’에서는 청각 장애인으로 잠깐 얼굴을 내비쳤고 최근 소속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선언했다. 
아역스타, 대학 첫 공연에서 눈물짓다 
2001년 ‘이별 없는 아침’ 이후 4년간의 공백은 아역 연기자 이정후를 성인 연기자로 다시 태어나게 한 시간이었다. 보통 연예인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인 대학시절을 온전히 연기 수련에만 투자했다. ‘아역스타’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였다. 
사실 ‘아역스타’의 허상은 대학 입학 후 동기생들과 만든 첫 작품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카메라 앞에서 필요한 동작만 하면 되는 드라마 연기와 무대에서 관객을 상대로 온몸으로 펼치는 연극 연기는 차원이 달랐다. “카메라는 클로즈업이라는 기능이 있지만 무대에서는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기술이 필요했다. 기계적인 도움은 받을 수 없고 도구라고는 오로지 무대에서 펼치는 연기뿐인데 그 단계를 극복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정후는 “첫 공연을 하고 숱하게 눈물을 흘렸다. 연극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안 되는 나 자신이 미워서였다”고 했다. 
휴지기와 삭발, 껍질을 깨는 고통 
대학생활을 특별한 활동 없이 조용히 보낸 것도 ‘아역 스타’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한 과정이었다. “친구들과 학교 생활에 충실했다. 톱질을 함께하며 무대를 만들었고 연기가 어색하다고 혼날 때 같이 혼났다. 사람들에게 빨리 잊혀지는 게 빨리 복귀하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털어 놓는다. 
작년 11월 방송된 ‘드라마시티-시은 & 수하’에서는 소아암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박박 밀어버렸다. 미니시리즈도 아니고 단 한번 방송되는 단막극인데 주저 없이 삭발을 감행했다. 이정후는 “좋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아역의 이미지를 씻어버리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고 밝혔다. 
“사랑의 아픔도 알아요” 
학과 과정이 워낙 빡빡한 탓에 여느 대학생처럼 자유로운 생활은 하지 못했던 이정후다. “한 작품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미팅은 한 번도 못해봤다”고 했다. 
그렇다고 연애경험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선배를 좋아해 가슴 콩닥거리는 경험도 해봤고 양다리를 걸친 그 선배의 배신에 슬픔에 빠져 본 적도 있다. 젊은 그들이 하는 만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충실히 밟은 이정후다. 
“오디션으로 당당히 뛰어들겠다” 
연기 활동 재개에 대한 욕망은 3학년 때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름대로 때가 됐다고 판단이 섰다. 그리고는 과감히 휴학계를 던졌다. “학업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도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나 공부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기 재개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르다. 더쇼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작품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공개 오디션을 받도록 하겠다. 아역스타의 이미지로 밀고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준비된 연기자라는 자신감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생각은 이정후도 별반 차이가 없다. 
“‘마이걸’의 이다해 어때요?” 
아직 본격 활동 재개를 알리는 첫 작품이 어떤 것이 될 지는 모른다. 이정후는 이제는 좀 밝은 역을 맡고 싶다고 했다. 
“아역을 연기하면서 유달리 많이 울었다. 항상 환경은 불우했고 삶은 기구했다. 실제로 시장 같은 델 가면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용돈을 쥐어주기도 했다”는 이정후는 “드라마 ‘마이걸’에서 이다해 씨가 했던 그런 역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옛날처럼 사극 연기도 다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 성인이 된 이정후의 얼굴에는 어릴 때의 가련한 느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밝고 명랑한 또래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생기가 넘쳐난다. 벌써 성인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 온 이정후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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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 가운데 사진은 아역배우로 활동할 때의 이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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