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이저리그(MLB)의 트렌드는 ‘강한 2번’이다. 예전 같았으면 3번을 쳤을 선수들이 2번 타순으로 올라와 활약 중이다. 전통적인 테이블세터의 개념을 깨는 도식이다. KBO 리그 또한 2번 타순의 공격력에 대한 재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SK는 그 흐름과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여전히 작전수행능력을 비롯한 ‘스몰볼’에 능한 선수들이 주로 2번을 봤다. 나름대로 장점도 있겠지만 타선 효율성 극대화에 대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를 시도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마땅한 ‘강한 2번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정진기(24)가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화순고를 졸업하고 2011년 SK의 지명을 받은 정진기는 팀이 주목하는 유망 야수 중 하나다. 기량을 꽃피우지는 못했지만 가지고 있는 재능이 많다는 평가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이제는 군 문제에서 홀가분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나름 준비도 많이 했다. SK 퓨처스팀(2군) 관계자들은 “정진기의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1월 열린 가고시마 유망주 캠프에서 정진기를 유심히 살펴본 정경배 타격코치는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외야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흔히 말하는 ‘똑딱이’가 아닌 장타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여기에 준수한 발도 갖췄다. 중견수 수비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수비 범위도 넓다. 어깨도 좋다. 정경배 코치는 “2번 타순에 들어서면 좋은 선수”라고 평가한다. 당겨 치는 스타일과 선구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고시마 캠프에서는 타격폼도 약간 손을 봤다. 이번 캠프에서 조용호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은 신진급 외야수로 뽑힌다.
정진기도 정신없는 적응기를 보내고 있다. 22살 때 이후 처음으로 가는 해외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10월에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교육리그에도 참가했다. “교육리그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라고 털어놓는 정진기는 팀의 기대감에 대해 “단점이 너무 많아서 딱 손에 꼽지 못할 정도”라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정진기는 “경기를 오래간만에 해서 그런지 타이밍을 못 잡겠더라. 타격폼도 이것저것 고치고 있다. 다리를 좁히고, 방망이 높이를 좀 더 올렸다. 원래 타이밍이 늦어 파울타구가 많거나 잡아당기는 스윙이 많았는데 한 손으로 치는 연습을 하면서 교정 중이다. 모든 면에서 하나씩 배워보려고 한다”라며 오프시즌 과제를 뽑았다. 다만 주위의 격려는 힘이 된다. 정진기는 “정경배 코치님께서 ‘가진 것이 많으니 잘해라. 그 재능을 가지고 못하면 바보다’라고 하신다. 더 많이 신경 써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미소를 보였다.
기대감이 크지만 당장 1군에 자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SK의 외야는 베테랑 선수들이 즐비한 전쟁터다. 팀이 한창 강할 때 입단해 선배들의 플레이를 옆에서 지켜봤던 정진기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정진기는 “내가 가진 장점이라고 해봐야 그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경기 감각도 계속 경기에 나가봐야 알 것 같다”라면서 “이제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다. 잘하는 후배들도 많다. 야구를 안 하다 하다 보니 절박함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1군 진입을 목표로 뛸 것”이라고 숨어있는 포부를 드러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