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에서는 9년간 일정 자격을 충족시킨 선수(대졸 8년)들이 생애 첫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두 번째 자격을 얻을 때까지는 꼬박 4년을 더 뛰어야 한다. 부상이라도 당해 등록일수가 모자라면 재자격 취득은 그만큼 늦어진다.
메이저리그(MLB)와 비교하면 꽉 막혔다. MLB는 FA 취득 기간이 짧을뿐더러 FA 행사 후 계약 기간만 채우면 다시 FA 자격을 얻는다. 따라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선수와 구단 모두 머리를 굴린다. 스타 선수들은 5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맺어 안정을 도모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시장 상황이 불리한 선수들은 단기 계약으로 미래를 기약한다. 구단도 마찬가지다. 꼭 필요한 선수는 장기 계약으로 묶고, 팀 연봉 구조에 따라 일부 선수는 단년 계약을 맺기도 한다. 요즘에는 옵트아웃(잔여연봉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취득) 조항이 유행처럼 번진다.
물론 시장 규모가 다른 MLB와 KBO 리그를 동일선상에서 놓고 비교하기는 무리다. 그러나 재자격 취득 4년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거세지고 있다. 현재 FA 계약은 대어들에게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 4년 계약을 맺어 재자격기간을 모두 소화한 뒤 다시 시장에 나온다. 그럴 일은 드물겠지만 양쪽이 원하면 8년 계약을 해도 된다. 문제는 4년 계약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3년 이하의 계약 기간이 모두 끝나도 재자격 취득까지 소속팀과 연봉 계약을 하며 뛰어야 한다.

MLB처럼 어떠한 전략을 활용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계약의 창조성’도 발휘되기 어렵다. 계약 기간을 놓고 이견이 생기기도 한다. MLB 같으면 1년 계약을 하고 내년을 바라볼 수 있지만, KBO 리그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FA 취득 전 다년 계약마저 막혀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 제도는 FA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우리 시장의 FA 개념이 진짜 '자유계약선수'가 아닌 프리에이전트에 머물러 있는 가장 결정적 원인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물론 구단도 꼭 이득은 아니다. 선수 측이 ‘애매하게’ 힘을 가진 경우, 구단으로서는 2년만 써도 될 선수에 4년 계약을 안겨주는 경우가 생긴다. 재자격취득 제한이 없다면 연 평균 금액을 올려 팀 연봉 구조를 미리 정리하는 MLB식 모델을 만지작거릴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 재자격 FA가 많아지면 시장에 공급이 늘어나 구단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올해 봤던 FA 선수들은 일괄적으로 최소 4년 이후에나 다시 FA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재자격취득 기간 철폐로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FA가 많아지면 구단의 지출도 커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어쨌든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 형성된다. 또한 FA 몸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본적으로는 협상에서 운영의 묘가 생긴다. 올해 KIA와 1년 계약을 맺은 양현종의 경우도 그런 케이스였다. 자격 취득에 있어 좀 더 명쾌한 정리가 가능해 선수들과 구단의 전략 구상도 그만큼 정교해질 수 있다. 내년 연봉협상부터 도입될 예정인 에이전트는 그런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다.
이 문제 해결에 선수들과 구단들의 관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다만 반드시 먼저 해결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 보상선수 문제다. 현행 FA 규정대로라면 1년 계약으로 영입해도 보상선수를 줘야 한다. 그렇다면 기간 철폐는 하나 마나다. 이런 보상선수 문제를 해결하려면 등급제 문제가 먼저 처리되어야 한다. 연봉으로 등급을 정하든, 미국의 퀄리파잉오퍼(보상FA선수자격)와 흡사한 제도를 도입하든 정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특성에 맞는 정교한 모델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도 필요하다.
등급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모든 개혁의 기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FA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선수도 알고, 구단도 알고, 관계자들도 안다. 올해부터 원소속구단 우선협상기간이 사라진 것처럼, 점진적으로 FA 제도가 정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